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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광장-고제헌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노인들이 집을 사는 사회
뉴스종합| 2018-04-12 11:28
한국 주택시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의 대표적 근거 중 하나는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이들은 일본 주택가격 붕괴 시기의 인구구조 변화에 주목한다.

일본 주택가격이 급락한 1990년대 초반은 일본 생산가능인구(15세~64세) 비중이 감소하고 단카이 세대(일본의 베이비붐 세대, 1947년~1949년 출생자) 은퇴가 시작된 시기다. 우리도 최근 베이비붐세대(1955년~1963년 출생자)의 은퇴가 시작됐고, 2017년을 기점으로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다수 주택시장 전문가들은 일본 주택시장 침체 요인을 도식화해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인구구조 변화는 주택가격에 영향을 주는 중요 요인이지만 이밖에도 당시 일본 주택가격의 적정성(거품정도), 주택공급량, 거시 경제 환경 및 다른 투자자산의 가격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일본 주택가격 변화 양상을 한국에 적용하기에 앞서 일본과 한국 주택시장의 차별적 요소들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 주택시장은 목조 건축 양식의 단독 주택 비중이 높고 재고 주택 거래 비중(14.7%, 14년 기준)이 현격히 낮다. 목조 주택은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건물 가치가 급격하게 낮아져 20년 이상 보유시 토지 가격만이 평가대상이다.

반면 한국 주택시장은 아파트 비중이 높고 재고 주택 거래 비중(74%, 14년 기준)이 높다. 한국의 주택 공급은 대규모 택지개발보다 재건축ㆍ재개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고령자 주택 처분시점에 처분 가능성과 처분 가격 등에 있어 차이를 야기하며, 일본 주택시장이 구조적으로 한국보다 고령화에 취약함을 시사한다.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는 투자자산으로서 주택의 효용에 대한 인식차이다. 일본은 주택시장이 침체되며 투자자산으로서 선호도는 현격히 저하됐다. 국토교통성이 조사한 ‘토지가 금융자산(예적금 및 주식)과 비교해 유리한 자산인가’ 설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조사가구 비중이 1993년 62%에서 2016년 31%까지 하락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도 1995년 50.6%에서 2015년 35.0%로 축소됐다.

한국 주택시장은 일본 주택시장보다 활기 있는 시장이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주택 경기 둔화 가능성이 있지만 일본과 같아질 가능성은 적다.

우리나라는 가계 자산구성 및 투자가 주택에 집중돼 있다. 가계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62.8%(2016년 기준)로 일본에 비해 2배 가까이 높다. 최근 주택경기가 살아나며 주택 투자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가계금융복지조사 중 여유자금이 생길 경우 부동산에 투자할 의사를 묻는 설문 응답비율 증가로 확인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특히 고령가구가 노후 대책으로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자가 가구 중 거주 외 1주택 보유 비율은 가구주 연령별로 비교할 때 60대가 20.4%로 가장 높고 2012년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고령가구는 은퇴 이후 소득이 감소함에 따라 자산 유동성이 중요하다. 유동성 낮은 부동산 자산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것은 고령층 소비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자금력 부족한 고령가구가 자본이득을 기대하며 주택 투자를 할 경우 주택 가격 하락시 파급 효과가 청장년층에 비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최근 3년간 60대 이상가구의 전세금 등 임대보증금 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은 최근 고령가구의 주택 투자가 여유자금이 있는 고령가구 일부만의 문제는 아님을 반증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가계자산이 과도하게 주택에 집중되고 가계가 노후 대비 수단으로 무리하게 주택 투자를 선택하게 되는 구조는 향후 주택시장 뿐 아니라 경제 전반에 위험한 시그널이다. 향후 정부의 주택 정책 및 경제 정책 운용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주택 투자에 대한 왜곡된 선호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인하는데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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