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그 ‘콧수염’이 문제야
기사입력 2018-04-12 11:31 작게 크게

“그 콧수염이 문제입니다.”

눈발이 퍼붓던 작년 1월3일 뉴욕 그리니치빌리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제45대 대통령에 취임하기 17일 전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에서 뛰었거나 그를 지지했지만, ‘설마’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줄 몰랐던 최측근들이 만찬에 모였다. 트럼프 정권 초기 백악관 실세였던 스티브 배넌과 보수언론의 귀재 로저 에일스 폭스뉴스 회장 등이다. 트럼프 첫 내각 인사를 주무르던 배넌이 말한다. “그 사람은 콧수염이 문제에요. 내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열심히 밀었는데, 트럼프가 좋아하지 않아요.” 에일스가 거든다. “그는 폭격수(bomb thrower)지. 작고 이상한 멍청이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야. 틸러슨(전 국무장관)은 석유만 안다고.”

올 1월 미국 칼럼니스트 마이클 울프가 펴낸 화제의 책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에 나온 장면이다. 책 속의 ‘콧수염’은 지난 9일(현지시간) 취임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볼턴은 이 책이 출간되고 정확히 석 달 후 그 자리를 꿰찼다. 실제로 볼턴은 트럼프 정부 출범 때 외교안보 수장 물망에 올랐지만 트럼프가 그의 콧수염을 못마땅하게 여겨 제외시켰다는 설이 파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가 그를 다시 불러들인 건 콧수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볼턴의 콧수염이 주는 공격적 이미지와 성향이 트럼프 자신의 기질과 맞다고 생각한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슈퍼 매파’ 볼턴이 돌아왔다. 컴백 타이밍도 아이러니하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핵심 인물인 그가 역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이 회담 테이블을 준비하는, 역대 가장 따뜻한 외교 훈풍이 부는 지금 등판한 것이다. 볼턴은 2007년 출간한 회고록 ‘항복은 선택이 아니다’에서 국무부와 직업 외교관들을 “타협주의자”라고 조롱한 인물이다. 그는 “북한같은 불량국가가 핵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려면, 정권교체나 군사력이 믿을만한 옵션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턴은 최근의 대화 분위기를 의식해선지 취임 전날엔 “내가 그동안 이야기했던 것들은 다 지나간 일”이라고 북한과 주변국들을 안심(?)시켰다. 당분간 트럼프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는 목소리를 좀 낮추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흐름을 잘 관리하더라도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북미 정상회담은 여전히 살얼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 원칙과 ‘선 핵폐기, 후 보상’ 일괄타결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신 중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등 우군 확보에 나서면서 ‘단계적 비핵화’ 메시지를 계속 흘리고 다닌다. 결국 양쪽 모두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다. 볼턴의 NSC는 북미회담 시나리오를 마련했다. 양측이 흡족한 악수를 나누는 최상의 시나리오부터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회담이 어그러질 경우 한반도 정세는 ‘도로 원점’이 아니라 ‘수십보 후퇴’다. 즉각 양복 안주머니에서 ‘군사행동 계획서’를 꺼낼 ‘콧수염’ 볼턴이 트럼프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비관적일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낙관만 할 상황도 아니다. 분단 65년의 겨울을 보낸 한반도에 봄바람이 불지만,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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