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헤럴드포럼-원광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우연을 필연으로 만들 남북과학기술협력
뉴스종합| 2018-04-27 11:15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우연을 접하게 된다. 그 우연이 준비된 자에게 온다면 그것은 기회가 된다.

저온 물리학의 거장인 카메를링 오네스(Heike Kamerlingh Onnes)는 여러 방법을 시도한 끝에 헬륨을 액화시켰고, 액화된 헬륨을 이용해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하던 중 액체헬륨의 기화온도인 4.2K(영하 269도) 근처에서 저항이 급격히 사라지는 현상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런 성질을 가진 물질 즉, 특정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을 ‘초전도체’라고 한다. 오네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한 이래 100여년 동안 12명의 과학자가 초전도체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우연한 발견이 과학기술 역사에 대기록을 남기게 된 것이다.

우연은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독일 통일의 움직임은 동독의 당 대변인이었던 샤보프스키가 ‘외국 여행 규제 완화’정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보프스키는 정책심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아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발표한다. 독일어가 짧았던 이탈리아 기자의 “언제부터 시행하는가?”라는 질문에 얼떨결에 “지금 당장”이라고 답한 것이다. TV로 중계된 이 엄청난 말실수에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들었고 그날 독일 장벽은 무너지게 된다. 그로부터 1년 후 독일은 통일을 맞이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분할국가가 된 우리는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파국으로 치닫던 남북 관계가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에 이어 마침내 남북정상이 마주앉는 역사적 순간으로 발전했다.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 정세 속에 우연히 통일이라는 기회가 다가온다면 어떻게 될까?

갑작스런 통일은 혼란이 따를 수도 있다. 70여 년 간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의 과학기술은 어느정도 수준인지, 남북의 기술격차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았다.

북한 과학자와의 교류는 단절됐고, 제3국을 통해 북한 과학자를 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처럼 향후 진행될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에 대비해 한국 과학기술계도 철저한 준비를 갖춰나가야 한다.

동ㆍ서독이 통일 이후 과학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과의 실질적인 공동연구도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한다. 스포츠로 남북이 하나가 된 올림픽의 경험을 발판 삼아 과학기술계도 과학을 매개로 이념과 사상을 넘어 경계 없는 과학기술 교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는 우연한 일에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반적인 원인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했다. 오네스가 초전도 현상을 발견하기까지 끊임없는 실험을 거듭했던 것처럼 우연한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평창올림픽 공동입장에서 시작된 남북정상회담처럼 남북과학기술계가 공동의 노력을 추구해 나간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필연처럼 찾아오지 않을까.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