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모든 것은 비핵화에서 출발한다
기사입력 2018-05-01 11:24 작게 크게

두 사람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매 장면이 비현실적인 드라마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깜짝 제안에 문재인 대통령이 선뜻 북으로 월경한 장면, 그러고나선 두 정상이 손 꼭 잡고 선을 되넘어 오는 모습, 폭 2018mm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아 나눈 대화들, 눈부신 초록 숲을 배경으로 한 도보다리 위의 차담. 만난지 불과 몇 시간만에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정말 좋은 길동무가 된 것 같았다. 두 퍼스트레이디까지 합류한 만찬장은 마치 사이좋은 친척들이 명절날 모인 듯 자연스러웠고 웃음이 넘쳤다.

2018년 4월 27일의 흥분은 가시지 않는다. 남북 정상이 전세계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공동 발표한 ‘판문점선언’도 역사적으로 평가받을만 했다. 판문점선언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두 정상의 의지를 명문화한 것이다. 북한이 정상 차원에서 비핵화 의지를 문서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의미가 가볍지 않다.

문서로만 머물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본게임’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선언의 이행 의지를 확실히 하려는 듯 했다. 5월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계획을 밝혔고 이를 공개하겠다고도 했다. 회담 사흘 뒤엔 30분 차이의 남북 표준시를 5월 5일부터 통일하겠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한반도 비핵화 여정은 아직 제자리라는 점이다. 우선 판문점선언은 전문가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역사적으로 진전을 이뤘지만, 기대했던 실행 조치 없이 느슨한 표현으로 담겼다.

1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명한 10.4 선언문에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비핵화 관련은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라는문구가 전부였다. 하지만 당시 사정은 지금과 좀 달랐다.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 핵폐기와 관련된 조치들을 논의하면서 비핵화 일정을 밟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때문에 10.4 선언문은 비핵화 프로세스를 6자회담 차원 논의에 맡겨둔다는 점을 확실히 한 것으로 풀이됐다. 노 전 대통령은 회담 후 대국민보고에서 “가져간 보자기가 작을 만큼, 짐을 다 싸지 못할 만큼 성과가 좋았다”고 흡족해 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6자회담 종말을 선언, 한반도 비핵화 시계를 거꾸로 돌려놨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선언에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남북 관계 진전을 향한 많은 바람과 계획을 담아냈다. 하지만 모든 것의 출발은 두말할 것도 없이 ‘비핵화’다. 완전한 비핵화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는 약속들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30일 “이제 그야말로 시작일 뿐”이라며 흥분된 분위기를 다잡고 북미회담의 성공을 강조한 점은 다행스럽다.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이고, 더는 물러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다. 북한이 핵 완성을 선언한 지금은 비핵화를 향한 ‘진일보’, 그 자체에 만족할 수 없다. 무조건 ‘완결’, CVID가 목표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아무리 명장면이 넘쳐난 정상회담이라도 철 지난 드라마의 재탕으로밖에 역사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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