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스승의날, 그리운 선생님
기사입력 2018-05-09 11:22 작게 크게

고3때 일이다. 학교 연극부 회장으로 활동했다. 10월말 학교 축제에서 연극무대를 올려야했다. 학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축제다보니, 책임감이 작지 않았다. 평일 늦게까지 연습했고, 공연 일주일 남겨놓고는 새벽까지 리허설을 반복했다. 무사히 공연은 마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너무 무리했나 보다. 단단히 탈이 났다. 제대로 숨을 쉴수가 없었다. 폐에 물이 찼단다. 늑막염 진단을 받고 집에 내려갔고, 곧장 병원에 입원했다. 학력고사고 뭐고 인생 망쳤다 싶었다. 할일 많고 꿈 많았던 고3 인생이 그렇게 마감되니 남은 건 절망 뿐이었다. 졸업식때까지 치료받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답답했고, 무력했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한심해 싫어졌다.

어느날 엽서 한장이 집에 도착했다. 연극부를 맡았던 선생님으로부터 온 손편지였다. ‘김군, 보게나’로 시작된 글에서 선생님은 정말 미안해하셨다. 연극 때문에 건강이 안좋아졌고, 그게 당신의 책임같아 너무 죄스럽단다. 내용은 짧았지만, 따뜻한 정이 듬뿍 담겼다. 희망을 잃지말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니 좌절하지 말라고 하셨다. 기댈 이 없었던 그 시절, 선생님의 엽서 한장은 내게 큰 힘이 됐다. 은사의 격려로 다시 일어섰다.

며칠후면 스승의날이다. 34년전 그 엽서 한장이 문득 떠오른 것은 다가오는 스승의날 때문일게다. 은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은 멋쟁이셨다. 늘 정장에 나비넥타이를 매셨다. 눈을 지긋이 감고 소월의 ‘진달래꽃’을 몇번이고 읽어주시던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평생 간직된 장면이다. 선생님은 흥(興)을 아시는 분이었다. 기분이 좋으시면 시조 한가락 멋지게 읊으셨다. 특히 국어 선생님으로 문학을 사랑했던 선생님은 인생에서 시(詩)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셨다. “인생에서는 시가 있어야 해. 시 없는 세상은 ‘죽은 가슴’을 안고 살아가는 것과 똑같지. 시가 있어야 세상이 아름답고, 인생도 아름다워지는 법이야.”

은퇴를 하신 후 선생님은 현직에 있을때보다 더 바쁘게 사셨다. 사진을 찍으러 방방곡곡을 누볐다. 젊을때 종군기자를 하셨다는 선생님은 시와 더불어 사진을 사랑하셨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와 함께 선생님을 찾아뵈었을때, 선생님은 당신이 직접 찍으신 엉겅퀴 사진을 액자에 담아 선물을 주셨다. “이래봐도 꿀이 많아. 벌 나비가 많이 모여든단다. 평생 서로 의지하면서 화목하게 살아.”

선생님은 평생 통일을 기다리셨다. 선생님 고향은 개성이다. 서울서 그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고향을 가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고두고 한탄하셨다. 몇년 전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은사께서 인천 앞바다에서 한 시간 걸리는 바다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유가족을 통해 들었을때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거기선 물이 돌고 돌아 고향까지 닿을 수 있다고 믿으셨단다. 고향 개성에 죽어서 혼이라도 가고 싶다고 하셨다는 말에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남북관계가 어느때보다도 좋다. 종전이니 통일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선생님이 이 소식을 접했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으리라. 스승의날을 앞두고 선생님이 무척 그립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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