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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기고-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대한민국 강소기업의 위기, 무엇이 문제인가?
뉴스종합| 2018-05-17 11:26
레이캅, 알톤스포츠, 휴롬 등 국내 강소 스타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 이 회사들의 성장은 강력했다. 특히 휴롬은 2008년 스크루를 이용해 저속으로 지그시 짜낸 원재료의 맛과 영향을 보존하는 착즙기를 선보여 대박을 쳤다. 2009년 300억원이던 매출은 2015년 2300억원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레이캅도 2007년 침구살균청소기를 선보인 후 2011년 300원대에서 2014년 18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성장세는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무엇보다 진입장벽을 쌓지도, 새로운 후속 제품의 혁신을 이끌어내지도 못한 결과다.

이런 추세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3대 대표적인 패스트패션(Fast Fashion) SPA 회사로 불리는 스웨덴의 기업 H&M도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2017년 9월부터 11월 말까지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 감소했다.

국내 강소기업과 H&M의 공통점은 성장기를 넘어 성숙기에 접어든 단계다. 특히 성숙기에 접어들게 되면 범용화의 덫(Commodity Trap)에 빠지게 된다. ‘범용화’란 18세기 증기기관, 19세기 철도와 전기, 20세기 자동차, 21세기 컴퓨터와 인터넷, 모바일 등 신기술이 시간이 흘러 당연한 기술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을 말한다.

레이캅의 침구청소기는 한 때 일본에서 30초에 한 대씩 팔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도시바, 샤프, 파나소닉 등이 비슷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제 침구 청소기는 범용기술이다.

현대적 개념에서 범용화 기간을 보면 엄청난 속도로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전 만 해도 하나의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면 최소 20년은 먹고 살았지만 지금은 4~5년 정도다.

가장 큰 문제는 범용화의 덫에 빠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대표적인 사례가 쌍용자동차의 렉스턴이다. 쌍용자동차는 지난 2001년 ‘렉스턴’이라는 SUV를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그때 내세웠던 브랜드 슬로건은 하이엔드 마케팅인 ‘대한민국 1%’였다. 아무나 살 수 없는 대한민국 1%라는 프리미엄 이미지를 극대화해 2001년 국내에서만 1만5000대를 판매했다. 그런데 2005년 자동차 수입이 자율화되면서 외국 SUV 차량이 들어오고, 2007년에는 현대자동차에서 렉스턴보다 세련된 베라크루즈를 출시하면서 렉스턴의 가치는 예전만 못했다.

이런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쌍용차는 2006년 렉스턴 II, 2007년 렉스턴 II 유로, 2008년 슈퍼 렉스턴 등으로 바통을 이어가면서 ‘대한민국 1%’라는 가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결과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 제안은 언제 해야 할까? 경영학 교과서는 ‘자사의 가치 제안이 범용화됐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서 가치 제안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성이 없다. 하나의 제품이 2~3년 연속 성장세를 보일 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한참 성장으로 자만의 늪에 빠질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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