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꿈·환상 12개의 웨딩드레스 결혼, 여성의 삶을 생각하다
라이프| 2018-05-21 11:09
서울미술관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展

‘스몰 웨딩’이 대세라 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식장이 호텔에서 들판으로 바뀌고, 하객수가 백여명에서 10명으로 줄어도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변하지 않는다. 화려하고 웅장한 드레스 대신 간소한 원피스를 입을지라도 그것은 ‘웨딩드레스’다. 단순히 흰 옷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꿈과 환상’이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꿈과 환상을 현대미술로 풀어내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맞아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전을 개최한다. 26명작가의 100여개 작품이 출품됐다. 건축학개론, 결혼은 미친짓이다, 또오해영, 만추 등에서 차용한 12명의 캐릭터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입었을 법한 12개의 웨딩드레스가 미술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결혼의 낭만부터 상처와 억압, 욕망까지 여성의 삶을 풀어놓는다. 

서른 다섯 서연의 방 전시전경. 서연의 드레스(우측) 옆을 지키는 심경보의 ‘클로즈 오브 더 푸어 맨XI’. [제공=서울미술관]

예를들어 “장래희망은 아나운서, 돈도 많이 벌고 유명해 질거야, 아니면 적어도 돈 많은 남자랑 결혼할거야…멋진 건물도 많고 사람도 활기찬 이곳에서 난 정말 멋지게 살아갈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건축학개론의 스무살 서연의 웨딩드레스는 현대여성의 평범한 일상을 역동적 자세와 행복한 표정으로 에너지 넘치게 표현한 아뜰리에 마지는 서연의 긍정적 마인드와 닮았다. 또한 중력을 이기고 날아가는 것 처럼 보이는 ‘비닐 봉지풍선과 의자’(전강옥)도 꿈에 부푼 서연의 또다른 모습이다.

그런가하면 이혼으로 지칠대로 지친 서른다섯의 서연은 “조개가 들어가면 조개탕이고 알이 들어가면 알탕인데, 매운탕은 왜 그냥 매운탕일까. 나 지금사는게 꼭 매운탕 같아.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고 그냥 맵기만 하네”라고 읊조린다. 레이어가 많은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얼굴마저 베일로 가려버렸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뿐인 내면이다. 이 서연의 드레스 옆을 지키는건 수백개 ‘태그’(Tag)을 이어붙인 심경보의 ‘클로즈 오브 더 푸어 맨 XI’(Clothes of the poor man XI)’과 독나방을 아름다운 나비 떼로 오인한 송영욱의 ‘스트레인저’다. 옷이나 신발 등 물건에 붙은 태그는 물건에서 떨어지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물질이 나름 중요한 위치를점했던 서연의 결혼생활,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건 순간이다. 뿐만이랴. 나비떼처럼 아름답게 보였던 그 순간, 알고보면 추악하고 두려운 것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디어 마이 웨딩드레스’의 또다른 축은 한국 최초 남성패션디자이너인 앙드레김이다. ‘쇼 머스트 고 온’이라는 주제아래 회고전 형태로 그의 웨딩드레스 컬렉션과 아카이브 자료가 나왔다. “의상에는 꿈과 환상이 있어야 해요. 왜 꼭 입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했던 앙드레김의 아티스트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9월 16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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