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람과 사람’을 공감하다…‘나의 아저씨’가 남긴 긴 여운
엔터테인먼트| 2018-05-21 11:14
고된 직장생활·실직·가족…
현실적 고민 겪는 일반인들

“아무것도 아니다” “행복하자”
서로 아픔을 이해·치유하는…
별거 아닌 일상 나누는 이웃
시청자들이 발견한 건 ‘나’


17일 종영한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올해의 수작(秀作)이다. 처음에는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치유해가는 이야기라고 했을 때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처럼 추상적으로 들린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작되자 김원석 감독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의 아저씨’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드라마다. 어떤 것이 찾아야 할 가치인가를 잔잔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단정짓는 시선과 통념에 대한 일갈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차분하고 뚝심있게 전개한 드라마가 있었던가?

삶의 무게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치유해가는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낸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

가족을 위한 삶을 사는 40대 기업체 부장 동훈(이선균)은 사채 빚에 시달리며 홀로 할머니를 봉양하는 20대 초반의 지안(이지은)을 계약직으로 뽑았다. 흔히 보는 아저씨와 젊은 여성의 멜로를 연상하며 불편함을 드러낸 시청자도 있었다. 겉으로는 동훈이 자신보다 더 힘든 삶을 사는 지안을 도와주는 것 같다.

하지만 동훈은 “지안은 나를 살리려고 이 동네에 왔다. 다 죽어가는 나 살린 게 너(지안)야”라고 말한다. 자신을 상무로 만든 것도 지안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쯤 되면 이들의 관계는 멋있고 부러워진다.

지안은 이 회사 사장 도준영이 “너 좋아하잖아. 박동훈”이라고 이상한 시선으로 비웃자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게 뭔지는 아나?”라고 되묻는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이런 지안을 부산으로 보내고, 가족과는 기러기가 돼 혼밥을 하며 눈물 흘리는 동훈의 모습에 완전 감정이입됐다.

아저씨 삼형제가 나고 자란 동네이자 ‘나의 아저씨’의 배경이 되는 후계동은 겉으로는 망가진 삶 같지만 따뜻하고 유쾌하며 끈끈한 정과 의리가 가득한 동네다. 현실에서는 사라진 판타지 같은 동네다. 한때 잘 나가는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별 것 아닌 일상을 이웃과 나누며 함께 웃는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낡고 허름하지만 그런 동네에 한번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이다. 기훈의 애인인 유라(권나라)는 “망가져도 괜찮다. 오히려 망해서 편하다”고 말한다.

최종회에서 외로운 지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장례식에 후계동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장례를 치러주는 모습은 한편의 감동 그 자체였다.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미 지안은 “다시 태어나도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들은 밤마다 편안한 아지트 ‘정희네’에 모여 일상의 피로를 푼다. ‘후계 조기축구회’ 점퍼도 이들의 끈끈한 정의 상징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대단한 능력자가 아니어서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 하지만 이웃 일에 당사자보다 더 많은 감정을 보여준다. 평생을 따뜻한 후계동에서 자라온 동훈은 가장 힘들 때 나보다 더 화내주고, 대신 욕해주는 ‘내 편’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고, 그것이 지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걸 느꼈고 있었다. 이런 동네에서는 지안 같은 ‘경직된 인간’도 녹여주면서 편안함에 이르게 해준다.

이 처럼 이 드라마는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감동을 남겼다. 많은 시청자들은 ‘인생 드라마’라고 꼽았다.

고된 직장생활, 파견직, 실직, 이루지 못한 꿈, 가족 문제 등 현실적인 고민을 배경으로 하되, 그것을 겪는 인물들이 우리와 닮아있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들 보기에 썩 괜찮은 인생을 사는 기업체 부장인 동훈(이선균)은 사실 가족의 울타리라는 책임을 지고 이 세상을 무기징역수처럼 살아가고 있고, 냉랭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사회초년생 지안(이지은)은 봉양이 필요한 할머니와 갚아야 할 사채에 하루를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밖에도 중년의 나이에 노모에게 얹혀있는 중년 캥거루와 그 자식들 때문에 걱정을 놓을 날이 없는 노모, 오래전 출가한 연인을 놓지 못하는 여자, 한때 잘 나갔었지만 퇴사한 중년 아저씨들 등 제각기 다양한 사정을 지닌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탄탄한 대본과 섬세한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통해 어느새 ‘나’의 이야기가 되어 시청자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등장인물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또한 인상적이다. ‘나의 아저씨’는 히어로가 등장해 극적인 해결을 이루는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긴 호흡으로 풀어냈다. 아픈 사람이 타인의 상처를 공감하고 손을 내밀며, 보듬어 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먹먹한 감동을 전했다. 그리고 그사이에 탄생하는 수많은 명대사, “아무것도 아니다”, “행복하자”, “파이팅” "뭐 사가" “윤상원은 우리의 추억이다” 등은 매 순간 보는 이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 내일을 살아갈 힘을 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아저씨’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차이와 편견, 그로 인해 생기는 오해와 불통을 깨나갔다. 당연한 의례처럼 물었던 “아버지 뭐하시니”라는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고, 나이가 세상의 무게를 덜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리다고 세상이 안 힘들지는 않았어”라고 이해하게 됐으며, 어떻게 볼지 뻔히 알기에 거리를 뒀던 여자 파견직 사원에게 “안 그런 놈 없다”는 부장 상사도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는 좋은 어른이 돼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사회에 만연하는 비뚤어진 시선들에 대해 ‘나의 아저씨’는 다름과 차이에 상관없이 사람과 사람이 오롯이 마주하는 순간 생기는 기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지옥 같은 이 세상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견딜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따뜻한 메시지. 많은 시청자에게 ‘나의 아저씨’가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로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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