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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 타계-인간적 면모] 권위와 격식 물리친 소탈한 이웃…경영엔 ‘뚝심의 승부사’
뉴스종합| 2018-05-21 11:47
‘나는’이라고 표현 않는 겸손한 자세
착한기업 긍정 이미지 구축에 한몫
경영에서 만큼은 물러서는 법 없어
오늘날 ‘글로벌 LG’ 일군 원동력 작용


“내가 꿈꾸는 LG는 모름지기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 남이 하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하겠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LG를 1등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누구보다 도전정신이 강했다. 최고를 향한 구 회장의 ‘도전과 끈기’의 리더십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으로서 LG를 만든 힘이었다.

기업가로서는 완벽을 추구했지만 평소 재벌가 인물답지 않은 소탈함을 보였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인간적인 매력으로 임직원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구 회장의 소탈한 성격은 재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면서 “오늘날 LG가 착한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것도 구 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2년 10월 구본무 회장이 전기차배터리 개발을 위해 만든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모습.

▶격식 없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구 회장은 격식에 크게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예절과 자기절제가 철저하기로도 유명하다. 행사나 출장 시에도 비서 한 명 정도만 수행토록 했고, 주말에 개인적인 일에는 홀로 다닐 정도였다.

그의 몸에는 자기절제와 예절이 배여있다. 공식, 비공식 자리를 통틀어 ‘나는’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며 임직원들 앞에서도 항상 겸손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권위와 격식이 거의 없다’. ‘소탈하다’. 구 회장의 성격에 대한 LG 및 재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구 회장이 금성사 임원으로 재직할 때도 인간적인 매력이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교전통이 깊은 구 씨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구 회장은 조부인 구인회 LG 창업회장과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에게서 엄격한 규율과 예의범절, 가족간의 화합과 형제간의 우애 등을 배웠다. LG에 뿌리내린 인화(人和) 경영은 이 같은 집안의 분위기, 가정교육과 무관치 않다.

구 회장의 소탈한 성격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도 많다.

재벌 총수였지만 자신이 LG그룹의 일원임을 잊지 않았다. 집무실 옆에 있는 대접견실을 개방해 임직원 모두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회장 전용 헬기도 임직원들이 출장갈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 예다. 심지어 계열사 사장단과 국내 사업장 투어를 할 때도 관광버스 두 대를 빌려 2박 3일간 다닐 정도였다.

재벌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란한 공항 의전도 일절 금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2006년 6월 LG글로벌챌린저 발대식에서 구본무 회장이 대학생들과 힘차게 깃발을 흔들고 있다.
2010년 7월 LG화학 미국 홀랜드 공장 기공식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

▶경영에서는 누구보다 ‘완벽주의자’이자 ‘승부사’= 온화한 성격을 가진 CEO였지만 일에서만큼은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지난 2009년 이천 LG인화원 만찬장에서 진행된 ‘LG스킬올림픽’에서 “조직전체가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정신이 충만하게 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완벽주의자’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구 회장이 강조한 정도경영과 ‘일등 LG’ 역시 경영만큼에서는 단호한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정정당당히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경쟁력과 혁신에서 누구보다 철저해야한다는 의지다.

동시에 ‘1등 LG’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고, 경쟁과 맞서 싸운 승부사였다. 3대 회장 취임 당시 구 회장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로 사명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다. 내부에서는 럭키금성이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반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국에서도 쓸 수 있는 사명이 필요하다며 끝까지 밀어부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기 속에서 승부사이자 구 회장의 뚝심있는 면모는 더욱 빛을 발했다. 외환위기 시절 김대중 정부의 빅딜 당시 정부가 반도체 사업을 현대그룹에 넘기려 하자 “대승적 차원에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 하지만 디스플레이 사업만큼은 넘길 수 없다”고 버텼다. 1990년대 말 데이콤 인수전에서는 삼성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데이콤을 인수했다. 그리고 오늘날 LG는 정보통신 수직 계열화에 성공한 국내 최대의 정보통신 그룹이 됐다.

혁신에 대한 의지도 남달랐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전기차용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 등의 분야에서 남보다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했다. 지난 23년 재임기간 2차 전지와 디스플레이 등 관련 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꾸준한 투자도 이어갔다. 오늘날 LG전자와 LG화학 등 여러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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