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앞으로 더 그리워질 LG 구본무 회장
뉴스종합| 2018-05-21 11:43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타개로 재계는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 한국 근대 기업사에 그가 남긴 족적은 적지않다. 그는 1995년 2월 50세에 경영권을 넘겨받아 30조원이던 매출을 160조원으로 5배 이상 키웠다. 그는 승부 근성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을 탁월한 감각으로 경영에 투영시켰다. 그사이 GS, LS 그룹 등이 떨어져 나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외형성장이다. 대단한 결실이다.

그룹 총수로서의 경영 능력은 인정하고도 남음이 있다. 글로벌 감각에 맞는 ‘LG’로의 그룹명 변경, 그룹의 주력사업이 된 디스플레이ㆍ2차전지ㆍ통신사업에 대한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는 그 결과물이다. 2005년 초콜릿폰을 시작으로 2006년 샤인폰, 2007년 프라다폰 등 해마다 대박을 터트린 LG 피처폰들은 구본무폰으로 불리기까지했다. 마지막 열정을 쏟았던 마곡지구 ‘LG사이언스파크’는 미래를 읽고 선점해 가는 그의 식지않는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

그는 흡집 없는 ‘3세 경영 후계자’였다. 과장부터 20년 넘는 경영 수업을 받아 불협화음없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그 이후로도 볼썽사나운 재산싸움을 하지 않았다. 2005년 창업 동지인 허씨 일가와 57년 만에 GS와 LG그룹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오히려 그룹분할을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았다. 누구도 LG의 대물림 경영에 토를 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본무 회장을 빛나게 하는 건 그가 평생 보여준 ‘삶의 자세’다. 그의 인간적 면모는 후세 기업인들의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그 큰 대기업 오너일가임에도 육군 현역으로 군대를 마쳤다. 총수가 되고도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성품을 보여줬다. 단골 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하고 장례식장을 비서 없이 조문하기 일쑤였다. 해외 출장에도 수행원 한 명만 단출하게 대동하곤 했다. 자녀의 혼례는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연명 치료를 원치 않았고, 장례도 비공개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치른다.

구 회장이 떠난 빈자리는 크다. LG그룹의 숙제도 많아졌다. 고인의 유업을 잇는 동시에 그룹도 생존을 넘어 성장해야 한다. 그건 곧 3세를 넘어 4세로 가는 한국 대기업 오너 일가들의 공통된 숙제에 다름아니다. 구광모 LG전자 상무의 어깨는 무겁다. 이 시점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아버지 구 회장은 그 본보기가 되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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