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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광장-고제헌 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금융혁신, 뒤처지는 고령층
뉴스종합| 2018-06-07 11:04
직장 동료들과 오랜만에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계산을 대신한 동료로부터 오늘 식사비용을 송금해 달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동료의 계좌번호를 외울 필요도 없이 요즘 많이 쓰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공인인증서 암호 입력도, 보안 OTP(One Time Password) 번호 입력도 없이 상대방 연락처만으로 내 몫의 식사비용을 간편하게 송금한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핵심 신기술들은 특히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기술 발달로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플랫폼으로 하는 금융서비스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고령층은 이런 혁신적인 금융서비스 발달로 인한 편의성 증대나 효용 증대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는 인터넷 뱅킹이나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 고령층의 비율을 통해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인터넷 이용실태조사(2017)에 따르면 연령별 인터넷뱅킹 이용률은 현격히 차이가 난다. 30대 약 91%, 40대의 80%가 인터넷뱅킹을 이용하는 반면 50대는 52%, 60대는 20%, 70대 이상은 6%만이 인터넷뱅킹을 이용하고 있다.

모바일 뱅킹에 있어서도 고령층의 이용률은 현격히 떨어진다. 지급결제보고서(2017)에 따르면 20,30대는 70%이상이 모바일 뱅킹을 이용하는 반면, 50대는 33.5%, 60대 이상은 5.5%만이 모바일 뱅킹을 이용한다.

금융서비스의 혁신으로 인한 중요 변화 중 하나는 비대면 거래의 확대다. 영업점을 축소하고, 대면서비스를 대체하는 인공지능 챗봇, 인공지능(AI) 상담도우미 등 다양한 첨단기술 활용이 시도 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거래에 있어 대면거래를 중시하는 고령층들에게는 실질적인 서비스 저하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고객 응대를 해본 금융서비스 종사자들은 고령 소비자 응대에 월등히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한국주택금융공사 내부에서 업무량 평가를 위해 자체적으로 직원들에게 업무처리 시간을 설문 조사한 결과 60세 이상 고령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연금 건당 상담심사의 평균소요시간은 주택담보대출의 상담심사 평균소요시간보다 현격히 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주택연금 상품구조가 주택담보대출보다 소비자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고령 금융소비자의 신체적, 인지적 능력 저하에 따른 응대시간 증가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이다.

고령층의 평균수명이 증가하면서 은퇴 후 고령층의 금융 수요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고령층의 금융 수요는 주택연금과 같이 자산 유동화를 통한 소득 창출이나 향후 건강 악화와 같은 목돈 지출에 대비한 투자 등 상품 설계의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가 포함되어 있어 고령층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들일 가능성이 높다. 고령 금융 소비자들에게 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고령층에게 주가연계증권(ELS)등 고위험 상품 권유를 자제하는 내용의 ‘금융소비자보호 모범규준’을 마련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또한 고령층을 위한 디지털 금융교육, 서비스 창구 개설 등 개선의 노력이 포착되기도 한다. 주택연금의 경우 금융직 은퇴자(53세 이상)를 활용하여 전문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효용성만을 기준으로 금융혁신이 진행될 경우 고령소비자의 후생은 현격히 저하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령층 금융소외를 해결하는 묘안이 아니다. 고령화의 특성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고령자의 구조적 소외를 야기하는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령사회 금융혁신에 정작 고령자가 빠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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