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좋은 정부의 자격
기사입력 2018-06-07 11:08 작게 크게

적폐와 갑질로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섰던 기업인들의 영장이 최근 잇따라 기각됐다.

인사청탁을 받아 신입 행원을 부당하게 선발하는 등 채용 비리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에 대한 구속 영장이 지난 2일 기각됐다.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을 상대로 한 잦은 폭행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아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 영장 또한 지난 4일 법원에서 기각됐다.

앞서 지난달에는 이른바 ‘물컵 갑질’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킨 이 이사장의 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에 대한 구속영장 또한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적폐와 갑질의 온상으로 각인됐다. 이른바 척결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사회적 공분의 표적이었다. 무리한 행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들이 일제히 신체를 구속하려 했던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적폐와 갑질의 과감한 척결은 현 정권의 지지 기반을 공고히 하는 이른바 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그간 눌려왔던 불합리함에 대한 적극적인 시정의 움직임은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행보는 잇따른 영장 기각에서 드러나듯 “균형 감각을 잃었다”는 비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인의 일탈’이라는 표면화된 현상에 대한 징벌의 시각 만이 존재한다. 다분히 감정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문제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은행 채용 비리의 본질은 불분명한 지배ㆍ소유 구조 탓에 외풍에 취약한 현 은행업의 구조가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다. 외풍에 취약하면서도 주요 시중 은행들은 과점 체제하에서 제한적 경쟁으로 매년 수조원이 넘는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은행원은 대표적인 최고급 일자리로 꼽힌다. 외압과 낙하산 채용의 유혹이 상존한다. 항공업의 경쟁 환경 또한 제한적이다. 양대 국적사 체제 하에서 배분된 노선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 탓에 기업을 지배하는 주주에게 안일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권 출범 1년이 넘어가는 시점까지도 현상이 아닌 본질에 대한 접근, 이른바 구조와 판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전무하다. 규제를 풀어 경쟁을 촉진하고, 산업의 혁신을 도모하겠다는 ‘혁신성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지난 1년간 ‘적폐청산’으로 일관하고 대중은 이에 환호한다.

좋은 스승을 논할 때 단순히 잘못을 엄하게 다스리는 이를 훌륭한 스승으로 꼽지 않는다. 잘못의 원인을 지적하고, 잘못된 행동에 이르게 된 원인과 나아가야할 비전을 함께 공감하며 제시할 때 제자들은 스승을 존경한다. 좋은 정부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기업인을 단순히 범죄자로 낙인 찍어 ‘한풀이’의 대상으로 삼는 데 그쳐선 안된다. 적폐와 갑질에 대한 꾸짖음이 있었다면, 동시에 우호적인 기업 환경에서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는 ‘착한 기업’의 탄생을 장려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대안 제시 없이 ‘회초리’ 만으로 일관하는 정부에게 이어지는 높은 지지율은 포퓰리즘과 결코 다르지 않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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