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유물유적
99년간 방치된 누더기 덕수궁
라이프| 2018-06-21 11:41
서울시민의 편안한 휴식터이자 내,외국인 도보여행자들이 부담없이 방문하는 관광지, 덕수궁은 일제의 횡포로 큰 상처를 입은 곳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이별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덕수궁에 대한 일제의 만행과 무관치 않다.

덕수궁은 고종이 13년간 대한제국 궁궐로 쓰던 곳이다. 옛 경기여고 터까지, 아주 넓었다. 원래 궁역은 지금의 덕수초등학교, 사랑의열매, 초기 미국대사관저는 물론, 광화문 4거리 인근까지 뻗어있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이 승하하면서 잘려나가고, 전각들이 훼손되는 수난을 당한다.

1920년대 덕수궁은 지금의 영역과 주한미국대사관저 하비브하우스 사이에 담장길이 조성돼 둘로 쪼개졌다. 하나의 궁이 생이별을 한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이별한다는 얘기는 이미 이때 나온 것이다.

조선왕조의 근원인 선원전 영역은 총독의 손에 넘어가 수탈의 진원지인 식민금융기관 조선저축은행 등에 매각됐다. 선원전은 헐려 창덕궁으로 옮겨졌다. 또 덕수궁 중심영역의 공원화 계획으로 돈덕전마저 헐려나가고, 함녕전의 정문이었던 광명문도 지금의 자리로 옮겨져 유물을 보관하는 전시관으로 변해버렸다.

돈덕전은 1902년 고종 즉위 40주년을 맞아 축하 예식을 하기 위한 서양식 연회장 용도로 지어졌다. 고종 면담 희망자들에게 가베차(커피)를 주는 대기장소, 외국 사신 접견장소, 국빈급 외국인 숙소 등으로 활용됐으며, 1907년에는 순종 즉위식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순종이 거처를 창덕궁으로 옮긴 후에는 덕수궁 공원화사업 때문에 마구잡이로 훼손됐고 이후에는 아동 유원지로 활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상처받은지 99년이 지난 2018년 6월에야, ‘덕수궁 제자리 찾기’ 기공식이 열렸다. 관람객을 맞으면서 2038년까지 순차적으로 복원된다. 덕수궁 복원 소식에 서울광장 붉은 악마들이 춤춘다. 

함영훈 선임기자/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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