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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AS]기업이 받는 ‘건강검진’…무조건 싼 게 좋은건 아니다
뉴스종합| 2018-06-21 18:01

[헤럴드경제 TAPAS=신동윤ㆍ구민정 기자]주기적으로 들어오고 나가는 돈을 외부 전문가들에게서 평가받는 ‘회계감사’. 이것이 바로 기업이 받는 건강검진입니다.

기본 검진과 달리 ‘선택 검진’은 준비ㆍ검진 과정이 복잡합니다. 하지만 기본 검진으로는 발견하기 어려운 큰 병을 잡아내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회계감사를 실시한다면 불투명한 회계 관행으로 인한 각종 문제들을 손 쉽게 해결할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비용입니다.

▶짠내나는 회계감사 비용ㆍ시간 투자=“자기 돈을 들이는 자해행위 정도. 좋게 말해도 너무 써서 먹기 싫은 건강식품 같은 느낌이에요”

국내 한 대기업 본사에 근무 중인 박우현(37) 씨가 말해준 회계감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건강검진으로 비유한다면 선택 검진은 커녕 기본 검진도 귀찮아한다는 것이죠.

해외 사례와 비교해보면 국내 기업들이 회계감사 비용과 시간 투자에 얼마나 짠 지 알 수 있습니다.

한미일 상장사 감사보수 및 감사시간 비교.

회계업계 관계자 A 씨, “현재 회계감사는 분기마다 감사인이 해당 기업을 방문, 그들이 제공해주는 보고서만 훑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오류를 짚어내는게 하늘의 별따기죠.”

회계법인 입장에서도 기업 내부 사정을 꼼꼼하게 들여다 볼 의지가 생기기 어렵다는 겁니다.

▶소홀한 회계감사로 거르지 못한 암(癌) ‘분식회계’…회사를 집어 삼켜=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큰 병에 걸릴 때까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바로 ‘분식 회계’라는 암이죠.


분식회계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안긴 기업들.

미국도 소홀한 회계감사로 인한 분식회계 문제로 사회가 큰 충격에 빠진적이 있었습니다.

2001년 미국 재계 5위의 에너지기업 엔론(Enron)이 15억달러(약 1조6700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여파로 엔론은 결국 파산했고, 2만여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죠.

분식회계란 암으로 고통받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대응책만은 달랐습니다.

사건 발생 1년만에 회계 장부의 오류가 있을 경우 기업경영진이 처벌을 받도록 규정한 ‘사베인즈-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어 경영진에게 더 높은 감사책임을 묻기 시작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대기업 대부분의 재무제표를 수시로 감시할 수 있도록도 했죠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을 수차례 겪으면서도 사실상 손 놓고 있던 한국.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회계 투명성 점수는 세계 꼴찌 수준입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2017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회계감사, 기업의 이사회 운영, 경영진의 신뢰도, 주주 권익 측면에서 63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전 5년간의 순위도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었죠.

▶부실 감사 낳는 낮은 보수ㆍ짧은 감사시간 관행 깨다=강력한 회계감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한다는 제도가 마련되기도 전인 2014년. 현대캐피탈은 회계법인에 전년 대비 2.8배나 많은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덕분에 감사시간도 전년 대비 2.5배 늘었습니다. 


증가한 현대캐피탈의 회계법인 비용 및 감사시간.

정태영 현대캐피탈 부회장. “회계감사의 강도, 비용 등에서 미국과 한국에서 겪었던 경험이 많이 달라서 의문을 갖게 됐고, 그래서 회계감사의 품질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낮은 보수와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대한 관행 개선 없이는 부실 감사가 계속될 수 밖에 없고, 이는 곧장 주주들의 큰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생각이었습니다. 이후 현대캐피탈 본사 건물엔 회계법인 감사인력이 상주하게 됐습니다.

꼼꼼한 건강검진으로 큰 병을 사전에 치료하겠다는 현대캐피탈의 의도가 빛을 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2017년 회계 시스템 결산 과정에서 데이터와 계산 방식 오류를 발견, 빠른 수정조치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회계 개혁의 일환으로 오는 11월부터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됩니다.

세계 최초로 ‘표준감사시간제’가 시행되면 기업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정해놓은 감사시간이 법적으로 보장됩니다. 이어 ‘핵심감사제도’를 통해 외부감사인은 감사 시 기업 재무제표 정정에 그치지 않고 경영 리스크까지 평가하게 됩니다.

전문가들은 개혁 조치가 빛을 보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비용의 추가적인 투입이 필수라고 얘기합니다. 대형법인과 중소법인간 양극화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업체별로 감사 시간이 크게 늘어나면서 그만큼 많은 인력 필요해진다”며 “감사인 수요가 갑작스레 늘면 구인난이 커질 수 있고, 인력 충원을 하지 못하는 회계법인들의 경우 과도한 업무로 인한 부담이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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