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외환보유액 4,000억달러 돌파…이젠 양보다 질
뉴스종합| 2018-07-04 11:33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4000억달러를 돌파했다. 한국은행의 공식 집계액은 지난달 기준으로 4003억달러다. 외환금고가 거덜 나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게 지난 1997년이다. 당시 남은 달러는 39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 21년 만에 100배 이상 불어났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이룬 산업화의 금융판 리바이벌이다. 밀레니엄 들어 한국경제의 달러 축적 역사는 눈부시다. 2001년(9월) 1000억달러, 2005년(2월) 2000억달러, 2011년(4월) 3000억달러 벽을 차례로 넘었다. 그후 7년2개월만에 4000억달러를 넘겼다.

경상수지 흑자 구조에서 대외무역 규모가 커지니 외환보유액이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 일본 스위스를 앞에두고 사우디 러시아 등과 줄 곳 5~6위권을 구성했던 우리의 외환보유액 순위는 지금 9위로 떨어졌다. 최근 2~3년새 홍콩과 대만 인도에 추월당했다.

물론 외환보유액을 양으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적절한 수준의 질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전판을 넘는 과잉방어는 불필요한 비용이다. 한국의 연간 수출규모가 5700억 달러 수준이다. 그런데 수출 3000억 달러 안팎의 대만이나 인도가 4400억 달러의 달러를 쌓아두는 건 신흥국의 외환리스크가 그만큼 더 크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은 대외지급능력이다. 외부 충격에 견디는 힘이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괜찮은 수준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I MF도 공식적으로 적정하다고 인정할 정도다. 객관적으로 그만큼 좋아졌다.

1997년 환란 당시 300%에 육박했던 1년미만 단기 외채 비율은 지금 30% 수준이다. 갚아야 할 달러가 가진 달러의 3배에 달했었지만 지금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민간 부문의 대외자산을 포함한 한국의 순대외 금융자산(대외투자-외국인투자)도 3월 말 기준으로 2765억달러나 된다. 한국 경제 대외 신인도의 기반이자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실제로 한미간 금리차가 역전되면서 국내에서 빠져나간 외자는 10억 달러를 조금 넘을 뿐이다.

다만 변수가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 역전이후 점차 확대될 한미간 금리격차에 우리 금융시장은 민감할 수 밖에 없다. 미ㆍ중 간 무역전쟁이 국내 금융시장에 먹구름을 몰고 올 수가 있다. 내년 3월 시작되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도 악재다.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를 넘기고도 우등생 자축을 자제하고 모범생 정도로 불러야 하는게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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