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유럽에서 만난 김정은, 한국축구, 아시아나
뉴스종합| 2018-07-09 11:24
최근 휴가를 얻어 보름의 일정으로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런던과 파리, 로마를 거치는 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생활 20년만에 큰 맘먹고 감행한 일이었다. 선배들한테는, 그리고 몇 년전까지만 해도 ‘언감생심’이었을테지만, 이젠 제법 긴 휴가도 자연스레 받아들여진다. 우리 사회도 달라졌다.

런던에서는 뜻밖 장소에서 뜻밖의 얼굴을 마주쳤다. 북미정상회담의 여운이라면 여운일터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런던의 대형마트 체인 중 하나인 ‘훌 푸드 마켓’에서였다. 계산대 가까운 매대에 김 위원장의 캐리커쳐가 ‘귀엽게’ 그려진 생일축하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비욘세나 아델, 메릴린 먼로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새겨진 카드와 나란히였다. 심지어 김 위원장의 것은 장당 4.99유로라는 가격표시와 함께 맨 위에 있었다. 김 위원장 카드에는 “당신 생일을 축하하며 한 잔 할 것을 명령한다”(Happy Birthday! I order you to drink!)’라고 씌여져 있었다. 오는 12~13일 영국 방문 예정임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로마에서는 때아닌 ‘동해물과 백두산이’ 애국가를 들었다. 마침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이 독일을 이긴 날 로마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찾은 식당에서 종업원인 이탈리아 청년이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독일을 이겼다, 축하한다”며 대뜸 매장에 애국가를 크게 틀어줬다. 이탈리아 종업원들이 한국인만큼이나 좋아했다. 그들은 “2002년에 한국이 우리(이탈리아)에게 한 일도 기억하지만, 독일을 이겨줘서 좋다”고 했다. 이탈리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본선에조차 오르지 못했으니 독일의 조별리그 탈락이 얼마나 고소했을까. 현지에 사는 한 한국인은 “유럽축구 강국으로서의 경쟁의식 뿐 아니라 게르만족에 대한 라틴족의 오랜 감정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귀국일은 공교롭게 아시아나항공에서 기내식 대란이 터진 날이었다. 오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연결편 문제로 출발시각이 3시간 지연됐다”는 문자 통보를 받았다. 기상이변이나 공항사정 때문이려니 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기내식 대란 때문이었다. 항공사측에선 앞뒤없이 “연결편 지연 때문”이라고만 승객에게 알렸다. 그리고는 출발 지연으로 저녁식사가 늦어졌으니 탑승 전 공항 매점에서 요기하라고 총 5유로 정도의 샌드위치ㆍ음료 교환쿠폰 한장을 줬다. 전적으로 항공사 책임임에도 ‘유체이탈’ 화법을 쓴 것도 그렇고, 승객들의 귀중한 3시간을 몇 천원짜리 쿠폰 한장으로 뒤바꾼 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외국인 승객들이 자세한 사정을 알면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에 대한 신뢰가 어떻게 될까 싶었다.

이제는 우리도 제법 긴 휴가도 누릴 수 있다. 극악무도한 독재자 이미지 일변이었던 북한 최고지도자가 외국에서 할리우드 셀러브리티같이 여겨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 축구는 이래저래 유명세를 타고 있다. 참 많이 변했지만 잘 안 바뀌는 것도 있다. 한국의 후진적인 기업 경영 문화다. 유럽 여행길에서 마주한 ‘한국의 오늘’이라고나 할까.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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