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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두현의 클래식에 미치다] 첫 만남의 설렘…현악기 떨림으로 클래식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라이프| 2018-07-20 11:10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장면. [제공=국립오페라단]
인간은 긴 역사 속에서 여러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해왔다. 음악, 그림, 춤, 문학, 영화 등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많다. 그리고 한 분야 안에서도 표현방식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음악만 해도 가요, 재즈, 탱고, 뉴에이지 등 장르마다 스타일이나 표현이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방식은 가요 중에서도 발라드가 아닐까 싶다. 가장 효과적으로 사랑의 행복이나 아픔과 이별을 노래한다. 무엇보다 가사가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가사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감정 이입 할 수 있다.

그럼 클래식은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까?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엘가의 ‘사랑의 인사’, 쇼팽의 피아노곡 처럼 대중들에게도 익숙하고 쉽게 이해되는 사랑 음악도 있다. 그러나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사랑곡도 많다. 클래식의 진가를 보여주는 사랑 음악들은 사실 이해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왜 이렇게 어렵게 사랑을 묘사했을까? 그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클래식 작곡가들의 관점이 다른 장르의 음악가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헤어진 옛 여인을 다시 만난 남자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자.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여전히 부족하지만 받아주겠냐고. 널 사랑하는 게 내 삶에 전부라 어쩔 수 없다고 말야.’ 가수 김동률의 곡이다. 내용과 어울리는 선율에 가사를 붙여 이해와 공감을 쉽게 끌어낸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하며 어떤 의미인지 추리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클래식은 오페라를 제외하곤 가사가 없다.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작곡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하려 노력해야한다. 결국 감상자의 상상력이 필요한 음악인 셈이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작곡가의 인생과 스쳐간 연인들을 연구하고, 음악이 가진 감성과 의미를 해석한다. 연주자들마다 같은 곡이 다르게 연주되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사랑의 감성을 펼쳐내는 방식이 다른 음악들에 비해 방대하다. 클래식에서는 다양한 감정과 분위기를 서사 형식으로 풀어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작곡가 자신이 사랑한 여인에 대한 집착과 광기를 보여주는데, 곡 전체가 과대망상으로 얽혀있다고 봐도 된다. 여인에 대한 상상은 관 속에 누워있는 자신과 그것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으로까지 이어진다. 사랑이 아름답지만 않다는 것을, 사랑에 숨겨진 수만 가지의 느낌과 생각들이 음을 통해 장황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에서는 첫 만남의 설렘을 현악기로 풀어낸다. 설렘의 동기는 점진적으로 다른 악기로 옮겨가며 발전한다. 사랑에 빠진 순간에 느끼는 심장의 미세한 떨림과 긴장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악기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능력이 있다. 클래식을 듣는 관객의 첫 번째 난제는 그 소리가 설렘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역시 관객의 상상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그렇게 수고스럽게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곡가가 보여주고자 하는 사랑의 감정을 발견하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음악의 세계를 맛보게 된다. 소리로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경탄한다. 애호가들이 그토록 클래식에 미치는 이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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