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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보수, 길을 묻다 - 소설가 이문열 인터뷰] “죽어라 보수, 가능한 빨리…보수 재건 위해 ‘상징적 죽음’ 필요”
뉴스종합| 2018-07-20 11:51

이젠 진정성 있는 장례식이 절실한 시점
비대위장 후보로 이회창 운운 ‘도깨비짓’
총선에서 ‘국민공천권’ 제안은 ‘부활의식’
평화, 실체 없어…北 핵포기 가능성 제로

“보수는 죽어야 해. 그것도 가능한 빨리. 그래야 빨리 부활할 수 있거든. 그런데 죽으려고 하지 않으니 다시 살아날 수가 있나.”

소설가 이문열(70)이 보수를 향해 죽으라고 외쳤다. 가능하면 빨리. 썩은 나무에서 꽃이 필 수 없듯, 썩어버린 보수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죽음만이 유일한 선택이다.

보수에 죽음을 제안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두고 분노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길에 나섰을 때 그는 한 일간지 칼럼을 통해 보수에 죽음을 제안했다.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 상황이 더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작가는 “정치를 들여다 본지가 벌써 40년인데, 그 중에서도 이번이 단연 최악”이라며 “2003년 차떼기 사건이라든지, 지난해 박근혜 탄핵 당시보다도 훨씬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위기는 보수가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지는 못하고 계파 갈등으로 내부 분열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는 보수 우파가 형형색색 갈라지지 않고 한 덩어리로 있었다”며 “지금은 보수의 실체를 누구로 잡아야 할 지조차 모르겠다. 지리멸렬하게 싸우기나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보수 정치 진영에게 ‘장례식’이라는 강한 처방을 내린 것은, 지금의 정치 현실과도 맞물려있다. 보수가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지난 지방선거 직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이 작가는 “친북이냐 반북이냐를 말하는 것 자체가 고약한 상황이 됐다”며 “(보수 정치가)버티거나 선택이 힘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남북문제 뿐 아니라, 경제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쏠림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하지만 보수정당을 자임하는 자유한국당 및 기타 보수 정치 세력들은 이런 위기를 극복할 의지가 아직 박약하다. 지난 총선에서 계파 싸움으로 귀결된 잘못된 공천이 결국 탄핵을 거쳐 이번 지방선거까지 위기를 자초했다. 그 위기가 너무 커진 나머지 우리 정치사에서 10년 주기로 반복됐던 ‘교체와 순환’의 흐름조차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더해졌다. “다시는 권력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민주당과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궤변이 더 이상 궤변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당의 비대위 체제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비대위가 결코 한국당을 살리는 해결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대위원장 후보로도 하마평에 올랐던 이 작가는 “누가 가도 살릴 수 없다”고 손을 저었다.

“원로들이 당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나. 20년 전에 대통령 선거에 나온 이회창 전 총리를 끌고 나오는 걸 보고 무슨 도깨비짓인가 했단 말이야. 당을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고 해결하라면 해결이 되나. 그냥 자기들이 죽고 싶지 않으니까 비대위 핑계 삼아 목숨을 끌고 가고 싶은 거지.”

약 한달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흘리며, 위기를 극복해야 할 수장 자리를 결과적으로 욕보이기도 했던 한국당 의원들의 행보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그가 말하는 죽음이란 ‘진짜 죽음’과 ‘상징적인 죽음’을 모두 포함한다. 진짜 죽음은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이 떠안았다. 작가는 “사법부 판단을 보면 아마 박근혜ㆍ이명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며 “보수의 정점에 서 있던 둘의 죽음은 보수에 있어서 어떤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쓸만한 판이 깔린 것 같다”고 말했다.

상징적 죽음은 ‘개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당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 방법으로는 인적쇄신, 즉 다음 총선에서 ‘국민공천권’으로 당을 구성하는 것을 제안했다. 작가는 “파벌이라는 게 공천권 때문에 생겼으니, 공천권을 국민에게 줘 그런 문제를 원천에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국민공천권을 ‘부활의식’으로 표현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과 탄핵으로 ‘진짜 죽음’이 이뤄진 가운데, 진정 보수가 살아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통과의례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보수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진보의 번영과 희망이, 다시 그림자같은 절망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다. 작가는 하지만, 지금 진보 여당은 그런 생각을 망각한 채 영원히 집권여당으로 남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일갈했다.

“사람은 잘못을 알면서도 반복하기 마련이거든. 정치도 사람을 닮아서 똑같아. 전 정권을 욕하면서 같을 일로 망하기도 하고 그렇지. 지금까지 보면 야당이 잘해서 바뀌는 게 아니라 여당이 잘못해서 바뀌었지. 어쩌면 이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해서 순환했다고 볼 수 있어. 잘못을 제대로 평가 받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그런걸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 본인들은 언젠가 자리에 누울 것이라는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그날이 오면 그들이 했던 것처럼 감방에 가야 하니 절대로 죽지 않으려고 정권이 바뀌는 순환시스템 자체를 깨려고 하는 작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

이 처럼 한쪽 색만 있는 정치의 시대는 ‘섬뜩할’ 뿐이다. 진보가 내세운 장밋빛 환상에만 취해 현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가 대표적이다. 감정에 쉽게 휩쓸리는 한국인 정서에 한반도 평화는 국민의 눈을 멀게 만들기에 완벽하다고 말했다.

“한반도평화의 실체를 보았나.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허상이지. 지금까지 한반도평화의 상황을 보면, 기분 나쁜 방향성을 감출 수가 없어. 우리는 군복무도 18개월로 줄이고, 군인 수도 줄이고, 훈련도 줄이는데, 이런 약화에 해당하는 평화의 진전은 어디서도 볼 수가 없다고. 이런 것에 사람들은 의문을 가져야 하는데 오로지 희망만 있지. 그리고 우려를 하는 이들을 이상하게 바라봐. 해서는 안 될 금기어를 말한 것처럼.”

그는 북한도 미국도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작가는 “미국은 다른 곳에서 이익만 얻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제로”라고 진단했다. 지나친 대북 낙관론에 빠져, 북한 김정은에게 놀아나고, 또 혈맹 미국으로부터도 버림받는 최악의 외교ㆍ국방 참사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이 같은 쏠림은 촛불집회를 시작으로 번진 광장문화에 대한 비판과 우려로 이어졌다. 이 작가는 “광장이라는 것이 짧은 시기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때에 좋은 순기능을 가지지만, 긴 시간 감정에 휩쓸린 이들이 모이면 반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며 “이제는 광장이 인터넷까지 옮겨와 상시적이 됐고, 그 안에서 오롯이 감정에만 휘둘려 비정상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는 작가가 30년 동안 살아 온 경기도 이천의 부악문원에서 진행했다. 문학도를 가르치던 부악문원은 어느새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았다.

젊은 시절에는 ‘문학계 보수 악동’이란 말까지 들으며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다. 사회주의자였던 부친이 월북한 후 모진 삶을 살아야 했던 그가 좌파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작품에도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대표작인 장편 ‘영웅시대’(1984ㆍ민음사)에 등장하는 빨치산을 하다 사살당하는 아버지라든가, ‘황제를 위하여’(1982ㆍ동광출판사)에 드러나는 왕당파적 세계에 대한 우화적 서술, 단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ㆍ문학과지성)에서 나타나는 중우정치(衆愚政治) 비관적인 시각 등이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그는 거실 창 밖을 잠시 아무 말 없이 바라 보고는 “여기를 30년 동안 부악문원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이름을 바꿔 보고 싶다”고 입을 열었다.

“여기 보면 정원에 소나무가 참 많거든. 꼭 성벽같아. 그래서 ‘창우진’(蒼友陣ㆍ소나무 진지)이라고 바꿀까 하고 있어. 진보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진지, 멋지잖아. 이 나이 먹고 싸울 힘이 있겠냐만은.”

이천=최정호ㆍ채상우 기자/123@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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