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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시카고 폭염’은 대화재보다 끔찍했다
라이프|2018-08-10 11:04

“도시와 공동체,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학을 수년간 연구하면서 재난이 닥쳤을 때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결정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시민사회라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시민이 단독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는 막대한 자원과 능력으로 대규모 계획을 통합하여 다른 어떤 집단보다 기후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폭염사회’에서)

1995년 7월13일 시카고 기온 41도
사망자 739명…1871년 화재의 두배
희생자 대부분 가난한 독거노인들

사회학자 ‘클라이넨버그’ 참사 분석
열악한 환경·이웃의 무관심등 교훈

1995년 7월13일 시카고의 기온은 41도까지 치솟았다. 체감온도는 52도까지 올라갔다. 도로가 휘어지고 강을 잇는 다리가 늘어나 바닥이 서로 맞물리지 않도록 연신 물을 뿌려대야 했다.

스쿨버스에 탄 아이 수백명이 한낮 교통 체증에 갇혀 열사병에 걸리자 소방관들이 아이들을 차에서 구출, 호스로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 병원으로 실어날랐다. 냉방시설이 별로 없는 지역에선 지역민들이 소화전을 열고 더위를 식히는 바람에 물공급이 달려 소화전 방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병원은 몰려오는 환자를 감당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이 폭염으로 시카고에선 739명이 숨졌는데 이는 1871년 역사적인 시카고 대화재 때 숨진 300명의 두 배가 넘는 수치다. 기상학자들은 고기압 상층부의 기압마루와 습한 대지의 조건이 우연히 동시에 발생해 생성된 느리고 고온다습한 기단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지만 엄청난 사망자수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교수는 수많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살인적 폭염의 사회적 조건에 주목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연구결과를 토대로 쓴 ’폭염사회‘는 바로 시카고 폭염의 사회적 부검이다.

저자는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며(…), 늘 존재했지만 알아채기 어려웠던 일련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한다. 자연적 환경에서 발생했지만 사회적 참사라는 얘기다.

저자는 검시관들이 의학적 부검을 실시하는 동안 희생자들이 살았던 집을 탐색했다. 이들의 거주지는 하나같이 사회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아파트나 싸구려 호텔이었다. 현지조사와 이웃들과의 심층인터뷰 등 오랜기간 여러 스펙트럼에 따라 진행한 연구결과, 그는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적 조건을 찾아냈다.

‘시카고 참사’의 피해 양상 중 두드러진 특징은 아무도 모르게 방에서 홀로 죽어간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폭염으로 수백명이 고독사했다. 사망한 지 며칠이 지난 뒤 발견된 이도 많았다. 홀로 죽어간 이들은 대부분 1인 가구, 노인, 빈곤층 등 사회의 취약계층이었다. 이들은 심지어 유품을 찾아갈 친척이나 지인도 없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선 독거 노인이 증가하고 있었고, 시카고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거노인, 특히 남성 노인들의 경우,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적이고 사회적 접촉이 적고 대부분의 시간을 TV를 보며 지낸다. 몸이 불편해 외출을 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이 사는 노인 임대주택이나 원룸주거시설은 대부분 냉방장치 등의 시설이 노후하거나 부족하고 관리가 허술했다. 노스이스트 사이드 지역의 한 호텔은 합판을 사용해 건물을 재구획하고 침대 하나, 옷장 하나, 의자 하나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수백 가구를 수용했다. 환기도 안되고 냉방장치도 없었다.

특히 안전한 환경은 폭염의 운명을 갈랐다.

시카고 노스론데일과 리틀빌리지는 인접한 지역으로 독거노인 수와 빈곤층 노인수가 거의 동일했지만 피해자 수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노스론데일은 19명이 숨졌지만 리틀빌리지는 그 10분의1 수준에 그쳤다.

저자는 두 지역을 현지 조사한 결과, 공업지역이었다가 쇠퇴해 버려진 건물과 공터, 폭력범죄, 낮은 인구밀도, 가족의 분산 등 지역적 환경이 악화된 노스론데일의 경우, 주민들의 사회적 고립은 심각했다. 반면 리틀빌리지는 왕성한 상업활동과 밀집된 주거지역 상대적으로 낮은 범죄율 등 안전한 환경이 조성돼 있었다. 그에 따라 노인들은 주변의 생활편의시설을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었다.

노스론데일 주민들이 거리의 위험 때문에 방에서 홀로 견딜 때 리틀빌리지 주민들은 쇼핑몰에서 이웃과 교류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었다.

저자는 당시 공공시스템의 취약도 꼼꼼이 들여다봤다. 응급환자 수송 구급차와 구급대원 부족, 병실 부족, 노인 전담 경찰 부재, 책임 회피 등 공공기관은 폭염에 대처하는데 실패했다. 저자는 당시 시카고시가 추구한 효율중심의 기업가적인 정부모델의 패배라고 지적한다.

폭염에 의한 사망은 결론적으로 ’사회 불평등‘문제라는게 저자의 진단이다. 이는 공공재화를 잘못 다룬 정부의 정책 실패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학기술적 대처의 실패이자 공동체가 서로를 보살피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후 시카고의 재난 시스템은 대대적인 개혁을 이뤘지만 시카코는 앞으로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폭염이 매년 나타날 것이란 예측에 긴장하고 있다.

저자의 연구결과는 1994년 역대 최고의 폭염을 연일 경신하고 있는 현재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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