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 스토리] 창작열정이 쓴 흥행신화…오늘도 ‘웃는 남자’
기사입력 2018-08-10 11:02 작게 크게

‘레베카’(2013), ‘마타하리’(2016)에 이어 최근 ‘웃는 남자’(2018)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뮤지컬 기획사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EMK)의 엄홍현 대표를 만났다. 맨손으로 상경해 뮤지컬계 이단아로 성장하기까지,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뮤지컬 공연보다 흥미롭다. 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뮤지컬 ‘마타하리’등 빅히트 
엄홍현 EMK대표 ‘175억 작품’ 인기몰이
“성공거둔 대작들 ‘너네가 뮤지컬 한다고?’라는 英·美 무대 올릴것”


여기 생긴지 10년만에 한국 뮤지컬시장에서 독보적 존재를 자랑하는 회사가 있다. 창작뮤지컬에 매달리고, 무대 세트가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려고 극장을 통으로 대관하는 회사. ‘레베카’(2013), ‘마타하리’(2016)에 이어 최근 ‘웃는 남자’(2018)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뮤지컬 기획사 이엠케이뮤지컬컴퍼니(EMK)다.

EMK를 이끌고 있는 엄홍현 대표를 헤럴드경제가 만났다. 맨손으로 서울에 올라와 뮤지컬계 대형기획사를 이끄는 대표가 되기까지,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시 태어나면 뮤지컬 기획자는 안 할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EMK의 다음 스텝은 무엇이 될지 설명하는 엄대표의 눈빛은 더욱 반짝였다. 이룰 수 없는 희망으로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한 미래의 꿈을 꾸는 그는 신선한 도전 에너지가 넘쳤다.

▶먼저 ‘웃는 남자’ 흥행을 축하드린다. 박효신, 수호 등 호화캐스팅도 그렇고 총 제작비 175억원이라 개막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다.

정말 걱정을 많이 했다. 제작자라면 누구나 그렇다. 작품을 10개 하면 그중 2개만 제대로 흥행해도 잘 됐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EMK는 ‘태양왕’이라는 뮤지컬을 제외하고는 성적이 좋았다. 그래서 분명히 언젠간 어려운 상황이 올텐데, 그것이 ‘웃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처음엔 있었다.

몇 작품을 하고 궤도에 오르면 ‘기본 틀이 있는데 그대로 하면 괜찮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 불안함에 계속 더 발전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처음 ‘웃는 남자’ 회의를 할 때 디자이너에게 그랬다. ‘지금까지 상상 못했던 걸 상상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전을 넘어서야만 한다는 압박에 늘 시달린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 결국 답을 찾는다. 물론 그 과정이 쉽다는 건 절대 아니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 ‘웃는 남자’를 보니 기본적인 스토리는 같은데 무대가 주는 스펙타클, 아름다운 노래들, 공연예술만이 주는 즐거움이 압도적이었다. 엄홍현표 뮤지컬의 특징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다 아는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그들이 생각하던 것 이상을 눈앞에서 보여주자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그 이상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관객이 만족하질 않는다. 뮤지컬 티켓값 절대 저렴하지 않은데, 그 돈을 주고 자신의 시간을 내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이다. 관객의 상상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된다.

7년 전 쯤 라스베이거스에서 오쇼(O show), 카쇼(Ka show)를 봤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직원들한테 공연이미지를 보내고는 “우리 시골가서 농사 짓자”이랬다. 관객이 상상 못하는 세트를 보여줄 게 아니면 뮤지컬을 하면 안된다는 각오로 공연 스타일을 확 바꿨다. 그 시작이 ‘레베카’다. ‘레베카’부터는 거대한 저택이 확 밀려오고, 천둥이 치면 나무가 흔들리고, 우산을 쓰면 정말 비가 내리게 물을 뿌렸다.

이런 걸 하고싶다보니 라이선스 작품보다는 창작에 애착이 간다. 라이선스는 기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작은 것 하나를 바꾸려해도 원작자와 협의를 해야하는데 선택의 폭이 좁다.

창작을 많이 하니까,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 보통은 3년 전부터 제작에 들어간다. 배우 캐스팅 후 연습에 들어갈 때 쯤이면 세트와 의상이 90% 완성된 상태다. 배우나 스태프들도 연습을 하면서 이 작품 괜찮다 아니다를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준비한다. 다른 국내 창작들은 대부분 연습하면서 대본, 넘버, 무대 다 수정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이미 완성된 상태로 준비에 들어가면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나.

적지 않게 든다.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든다. 이번 ‘웃는 남자’는 무대 세트가 제대로 구현되는지 확신할 수가 없어 다른 공연장을 대관해 무대를 설치해봤다. 남들이 생각하면 ‘이상한 놈’이다. 절대 이렇게 할 수 가 없다. 그러나 EMK는 한다.

‘웃는 남자’ 마지막 장면에 공중을 오랜시간 떠다니는 흰 천이 나오는데 이게 가격이 1000만원이다. 돈도 돈이지만, 이 장면을 꼭 구현하고 싶은데 과연 그런 천이 있을까 싶었다. 1년 동안 전 세계를 뒤졌다. 공연시작 1달 전에 겨우 찾았는데, 가격도 비싸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주문했다. 공중에 안 뜨면 그냥 내가 옷 해입자 싶어서. 해보니 정말 아주 작은 공기의 흐름에도 공중에 뜨더라. 씬의 미장센이 확 살아났다. 사실 50만원이면 비슷한 천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차이가 난다. 아주 작은 차이가. 그런 차이가 고전과 명품을 만드는거 아닐까. 관객의 만족도를 좌우하는거 아닐까 싶다.

초연만 하는데 무대설치비가 30억원이라고 하면 비싸지만 이걸 30년동안 계속 공연한다고 생각해보라. 30분의 1의 비용이다. 지금 돈이 많이 든다고 비싸다고 안하면 관객이 만족할 수 있을까.

제작자가 태생적으로 갖는 큰 공포 중 하나가 ‘이거 제작비 못 뽑는데 다음에 앵콜 할 수 있겠어?’다. 엄청난 스트레스다. 그런데, 2010년 시작한 EMK는 원래 돈이 없었다(하하). 그래서 작품을 시작할 때는 ‘올인’한다. 전력을 다해야 겨우 원상복구되는 상황을 만들어야 최대 역량이 나온다고 본다. 그래서 초반에 제작비 얼마드는지 전 회사에 공유한다. “망하면 끝이야” 이렇게 느끼고,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잘 할 수 밖에 없다. 선택도 신중해지고 최대의 효과를 노리게 된다. 

▶어떻게 뮤지컬과 인연을 맺게 됐나. 이쪽 전공자도 배우 출신도 아닌데.

옛날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내가 뮤지컬 한다는 걸 안 믿는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철이 좀 일찍 든 편이다. 서울로 올라와선 안해본 일이 없다. 쌀 배달, 포장마차, 두부장사, 청바지 도매상….

그래도 연극은 좋아해서 대학로에서 사랑티켓으로 3000원, 5000원짜리 연극 많이 봤다.

2000년 쯤이었나, 텔레마케팅으로 인터넷 가입시키는 그런 사업을 했는데 무척 잘됐다. 3년 약정으로 나를 통해 계약하면 로열티가 계속 떨어지는 방식이었다. 당시에 ‘천리안’ 이런 프로그램 설치하시는 기사님들에게 영업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박카스 돌리고, 점심식사하는 식당가서 대신 계산해 드리고, 회식도 시켜드리고. 그랬더니 그 기사님들이 내 명함을 고객 집에 두고 오고, 그렇게 사업을 확장했다. 딜레마는 재미가 없다는 거였다. 매일 수금 얼마 됐는지 체크하는거 말고는 할 일이 없더라. 그래서 나왔다.

그 다음 했던 일이 ‘스타스키캠프’였다. 무주스키장에서 스타와 함께 스키도 타고 밤엔 캠프파이어도 하는 이벤트였다. 광고를 시작하자마자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전화가 쏟아졌는데 두 해 연속 완전 망했다. 첫 해는 눈이 안와서, 다음 해는 눈이 너무 많이와서. 그래도 이 사업을 계기로 연예인들과 인맥을 쌓게 됐고 지인이 뮤지컬에 투자하라고 해서 2004년에 투자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정산을 안해주더라. 공연이 흥했으면 흥했다고 망했으면 망했다고 정리를 해주어야하는데,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해보자 싶더라. 그렇게 뛰어들어서 ‘드라큘라’를 올렸는데 당연히 ‘쫄딱’ 망했다.

▶그래도 다시 도전한 건가.

빚이 상당했다. 인생의 막장에 왔다 싶어 자살도 생각했다. 그래서 여관방에 혼자 들어갔는데 무서워서 못죽겠더라. 이대로 끝내긴 너무 억울했다. 인생 살면서 한 번은 더 해봐야하지 않을까. 다시 하겠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또라이’라고 했다. 뮤지컬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삼총사’, ‘잭 더 리퍼’, ‘햄릿’에 스태프로 참여해 작품을 제작하는 노하우를 쌓았다. 그리고 2010년 1월에 EMK를 시작했다. 서른 일곱살이었다.

뮤지컬은 돈이 많이 들지만 돈 만으로 하는게 아니다. 자본력으로 캐스팅하고 마케팅해서 시장을 이끌 수 있다면 국내 대기업이 장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디자이너의 마음을 열고, 연출가의 생각을 빌리고, 스태프와 배우에게 왜 이 작품을 해야하는지 설득하고 열정을 끌어내야하는데 그건 돈으로 하는게 아니니까. 사장이지만, 늘 ‘을’이다. 쉽지 않지만 내가 잘하는 일이다.(웃음)

▶EMK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늘 새로운 걸 해야한다고 했는데.

당연히 세계시장 진출이다. 한국은 포화상태다. ‘마타하리’도 그렇고 ‘웃는 남자’도 그렇고 내년에 선보일 ‘엑스칼리버’ 모두 세계 무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아예 뮤지컬의 종주국인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시작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작품명을 밝힐 순 없지만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시장도 좋지만 영국이나 미국을 노리고 있다. 처음 이 제안을 했을 때 영국 파트너사는 “너네가 뮤지컬을 한다고?” 하는 식이었다. 자존심 상하더라. 한국 뮤지컬이 많이 성장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변방 중의 변방이다.

‘마타하리’엔 외국 뮤지컬 관계자 60여명, ‘웃는 남자’엔 70여명이 찾아왔다. 그리고 인정해주더라. EMK는 좀 만든다고(하하).

2020년이면 10주년이다. 깜짝 놀랄만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해도 좋다.

이한빛 기자/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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