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21세기 식탁의 풍경
뉴스종합| 2018-09-18 11:21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중학교 시절, 허구한 날 반찬으로 단무지만 싸오는 친구가 있었다. 여럿이 어울려 도시락을 까놓고 반찬도 서로 나눠 먹던 그 때, 그 친구 엄마는 왜 맨날 단무지를 싸보낼까 궁금했다. 왠지 물어볼 수도 없었던 그 의문은 끝내 풀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그 친구가 정말 단무지가 맛있어서 매일 싸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본식 꼬들꼬들한 단무지의 식감과 소리, 샛노란 빛깔이 좋아 자주 먹게 되면서 든 생각이다.

얼마전 일본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도 그 단무지 생각이 났다. 2016년 아사히 신문사를 그만두고 ‘퇴사하겠습니다’란 책으로 일대 화제를 불러 모은 그는 국내에서도 솔직한 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거창한 인생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먹는 일에 대한 얘기다.

어머니가 식구들을 위해 무슨 요리를 해야 하나, 잠 못자며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보고, 이게 아닌게 싶었던 그는 간소하면서도 맛있고 영양있는 식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밥, 국, 채소절임 때로 생선구이의 소박한 밥상이 주는 행복과 건강 말이다. 그 중심에 밥이 있다. 그는 밥만 맛있게 잘 지으면 단무지 하나만으로 충분히 건강한 밥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자신의 경험과 식탁을 통해 보여준다.

식탁을 차리는 일은 사실 간단치 않다. 외식을 자주한다 해도 밥짓기를 피해갈 순 없다. 요즘은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반찬가게나 배달 반찬이 잘 발달돼 있어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밥을 짓고, 찌개나 국 하나 정도라도 만들려면 품이 들 수 밖에 없다. 찌개나 국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쉽지 않다. 오래 전 ‘작가와 요리’를 취재하면서, 만나는 작가마다 된장찌개 요리법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중 ‘머나먼 쏭바강’의 작가 박영한 씨로부터 배운 요리법을 오래 애용하고 있다. 그가 들려준 맛있는 된장찌개의 비결은 무다. 썩썩 무 몇 조각을 저며 넣는 게 포인트다. 묘하게도 이 무가 재료의 맛을 어울리게 하고 국물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집된장과 마트에서 파는 된장을 2대1로 섞는 것도 그가 알려준 또 다른 조합이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코스모스가 맑게 피었던 가을날, 작가의 작업실 풍경이 떠오른다. 찌개에는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 찌개 하나 만으로 충분한 찬이 된다. 거기엔 고슬하게 막 지은 밥이 딱이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실 무엇이 몸에 좋은 건가는 과학적으로도 정답은 없다. 가령 탄수화물을 제한하는 고단백 다이어트가 유행이지만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탄수화물 섭취가 적으면 사망률이 올라간다.

다만 풍성한 식탁은 더 이상 21세기 건강 트렌드는 아니다. 바른 먹거리 한, 두 가지로 재료 하나 하나를 온전히 음미하며 느리게 먹는 걸 전문가들은 추천한다. 이는 그저 멋진 포즈가 아니다. 많은 음식을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과 재료의 낭비를 줄일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에도 좋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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