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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아동학대]“아이 불이익 당할라”…학대 의심 들어도 ‘쉬쉬’
뉴스종합| 2018-09-19 09:17
-어린이집 등 아동학대 3년간 2400건…이의 제기는 주저
-“까다로운 엄마 될까봐 조심”…“다른 학부모 눈초리도”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네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김모(40) 씨는 잇따라 보도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소식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에게 맞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런 적 있다고 대답한 것. 여러 차례 맞은 적이 있다는 아이의 말에 당장 원장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그보다 걱정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김 씨는 “훈육으로 볼 수 있는 애매한 정황도 있어서 굳이 따지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걱정되었던 건 원장에게 이의제기를 했다가 괜히 아들만 피해를 볼까 봐 참았다”며 “맞벌이 부부 입장에선 아이를 무조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 잇따른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으로 학부모의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속만 끙끙 앓고 있다. 사실관계 확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했다가 아이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19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치원에선 818건,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어린이집에선 2356건의 아동학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전날엔 경북 구미 산동면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3세 남아를 발로 차고 쿠션이나 몸으로 짓누른다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지난 17일엔 서울 강동구에서 원생들을 상습적으로 손찌검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에 대해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학부모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보육교사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거나 지나친 훈육을 하더라도 무작정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설명이다.

두 딸을 키우는 전업주무 김모(31ㆍ여) 씨는 “지역 별로 어린이집 원장 간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어 어린이집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어린이집을 옮겨도 ‘까다로운 엄마’로 찍힐 수 있다”며 “나혼자 피해를 받으면 상관없는데 그 여파가 모두 아이에게 갈 수 밖에 없으니 학부모는 전적으로 을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실 급식 의혹이 불거졌던 서울의 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던 워킹맘도 “부실 급식 의혹이 나왔을 당시 화가 치밀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원장의 해명을 믿어주는 척하고 아이들의 개인 간식을 많이 챙겨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가 오히려 다른 학부모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경기도 성남 분당의 한 어린이집에선 0세반에 아이를 보내던 학부모가 아이를 너무 방치한다며 원장에게 문제를 제기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커뮤니티 내에선 해당 학부모 때문에 어린이집 원장이 그만두게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로 3개월 후 원장은 바뀌고 당시 0세반을 이용하던 워킹맘 학부모들이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오자 모든 비난의 화살이 해당 학부모에게 돌아갔다.

전문가들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 장치와 함께 보육교사와 학부모간의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준환 충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서로 신뢰를 쌓은 상태여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의 제기가 곧 오해와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부모 상담을 최대한 자주 가져서 상호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제도 개선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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