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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자전거 헬멧 의무화 5일째…‘묻지마 규제’가 낳은 혼란
뉴스종합|2018-10-02 11:11

자전거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지 5일 째. 현장의 혼란은 여전하다.

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따라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는 ‘자전거도로’와 ‘도로법에 따른 도로’에서 자전거를 탈 때 안전모를 착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훈시규정으로 단속 규정도 없고, 위반을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평소 헬멧 없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과 이를 제지해야 하는 경찰 모두 혼란스러운 이유다.

이는 애초 예상된 결과였다. 해당 법 개정은 애초 일반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이 아닌 전기자전거 활성화 문제에서 시작됐다. 별도의 면허 취득 없이 전기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려는 자유한국당 송희경 의원 등이 반대 측이 안전 문제를 지적할 것을 우려해 법안에 헬멧 의무화 착용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전기자전거와 일반자전거의 구분을 짓지 않았다. 국회에선 이에 대한 지적은 없었다. 법안은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헬멧 의무화 착용 규정은 국회의원들의 안일한 입법활동의 산물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이같이 불편하게 탄생한 자전거 헬멧 규정은 금세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적인 장거리 라이딩족 사이에선 큰 반발이 없지만 자전거를 가벼운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반발이 거세다. 짧은 거리를 이용할 때도 헬멧을 써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을 가진 시민들은 들고 일어섰다. ‘맨머리유니언’ 등 10개 단체는 지난 7월에 이어 지난달 29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련에 상황들은 자전거이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정책시행이 빚은 결과이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며 “헬멧 의무화로 자전거를 타는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자전거 인프라 구축과 사고 자체의 예방이 먼저”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의 자전거 사업마저도 위법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서울시의 경우 시내 곳곳에 ‘따릉이’를 비치하고 한강 공원에서도 공용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지만 헬멧은 대여해 주고 있지 않다. 헬멧은 시민들이 각자 챙겨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실적인 여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규정의 폐해다.

서울시가 개정안 시행에 앞서 헬멧을 무료로 빌려주는 시범 사업을 두 달간 펼쳤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자전거 헬멧 1500개 중 357개를 분실(23.8%)하고 따릉이 이용고객 1605명 중 안전모 착용자는 45명(3%)에 불과했다.

대부분 타인의 땀이 묻은 헬멧을 쓰기 꺼려진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결국 서울시는 헬멧 대여 시범사업을 중단했다.

규정 시행 이후 현장에서 이를 담당하는 경찰도 내부적으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현장에서 교통 소통을 담당하는 경찰 인력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헬멧 의무화 홍보 및 계도 업무만 늘었기 때문이다.

일선 교통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헬멧 홍보 및 계도 활동에 별도 인력이 지정된 것이 아니고 교통 업무 경찰관들에게 추가 업무가 주어진 격”이라며 “낮에는 교통사고나 경호 업무를 하다 밤에는 음주운전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자전거 관련 홍보와 계도활동까지 담당해야 하니 실질적으로는 손이 다 닿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현장 곳곳에서 성토와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자 국회는 부랴부랴 다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 등 10명은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법 조항을 ‘안전모를 착용하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로 변경하는 법 개정안을 냈다. ‘착용’이 의무가 아니라 ‘착용하려는 노력’이 의무가 되도록 법을 바꾸자는 것이다.

안 의원은 “동네에서 잠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거나 공용 자전거를 빌려 타는 경우 인명보호 장구(안전모)를 매번 갖추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며 “인명보호 장구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자전거 헬멧 규정은 사회적 논란만 일으킨 채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현실성이 없는 규정의 예고된 운명이다.

법과 규정을 만드는 이유는 국민이다. 이로 인해 영향을 받는 주체 또한 국민이다.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는 규정은 빈 깡통이나 다름없다. 유명무실한 법을 만들어 강요한 국회는 이를 자인할 꼴이 됐다.

설득의 핵심은 현실성이다. 국민의 현실을 이해한 규정만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지금 국회에게 필요한 건 국민의 현실을 읽을 수 있는 눈이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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