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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홍경한 미술평론가] 제 역할 상실한 비엔날레
라이프|2018-10-12 11:18

비엔날레의 개최 목적은 동시대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번역하고 공론화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미술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더니티를 적시하며, 이를 거처삼아 거시적 혹은 미시적 담론을 창출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이다.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도큐멘터와 같은 세계유수의 비엔날레와 국제적인 미술행사들은 그 의미와 주요 기능을 단순히 세계미술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정짓지 않는다. 미술담화의 생성과 미적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성취를 중시함으로서 독점적, 중심적 위치를 점한다.

한국의 비엔날레들에게선 위와 같은 최소한의 기능과 역할을 발견하기 어렵다. 비엔날레 특유의 비판의식과 저항의 힘, 날것의 파닥거림은 거세된 지 오래이다. 수는 많으나 차별성과 변별력은 오십보백보다.

지난 9월 7일 개막한 광주비엔날레만 봐도 아시아 최고의 비엔날레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평범하다. 무려 11명에 달하는, 역사상 가장 많은 기획자들이 참여했지만 이렇다 할 이슈를 제공하지 못한다. 부풀어 오른 덩치에 비해 무게감은 줄었으며, 주제전은 꽤나 상투적이다.

화제가 된 북한미술은 ‘선전’의 장이다. 20여점의 북한 그림은 조형적으로 꽤나 리얼리티 하지만 삶의 리얼리티를 읽을 수는 없다. 아무리 다른 각도에서 살핀들 체제찬양이라는 본연의 속성은 속이지 못한다.

눈에 띄는 건 엉뚱하게도 홈페이지를 도배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기획자들의 과시성 사진이다. 그곳엔 규모의 경제학과 정치가 녹아있을 뿐 허명에 불과해진 대표 비엔날레의 초상과 현실은 은폐되어 있다.

광주비엔날레와 하루 차이로 문을 연 부산비엔날레 또한 기획전을 확대한 정도에 머문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규모를 축소했다지만, 특별할 것 없는 기획력을 감추기 위한 변명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게 한다. 더구나 유독 넘치게 등장하는 남북 관련 소재는 신파적,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설픈 낭만주의를 되풀이한다.

기능과 역할의 상실은 여타 비엔날레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본래 미디어도시로써의 서울을 보여주자는 것이었으나 정작 전시는 본질과 크게 상관없다. 미디어의 개념 확장과도 거리가 멀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단일 분야 비엔날레라는 특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갈지자를 그린다. 주요 전시장 중 하나인 성산아트홀에서의 전시는 ‘파격’을 내세웠지만 그야말로 파격적으로 정체성을 갉아먹는다.

한국의 비엔날레들은 미학적 비전과 새로움에 대한 가능성을 상실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변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채 지역 헤게모니의 장이 되거나, 의무방어전마냥 치러지는 그저 그런 행사에 불과해졌다. 그만큼 국민들의 무관심은 높아지고 있으며, 예산 낭비라는 절망만 쌓이고 있다. 이쯤 되면 비엔날레 무용론이 불거져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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