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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보안사, 부마항쟁 직후에도 민간인 사찰”
뉴스종합| 2018-10-16 08:47
[사진제공=연합뉴스]
-3급 군사기밀 당시 작성 문건 최근 비밀해제
-정계, 학계, 학생사회, 종교계 등 광범위 사찰


[헤럴드경제=한영훈 기자] 1979년 10월 박정희 유신체제에 항거한 부마항쟁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령관이었던 국군 보안사령부가 정계와 학계, 학생사회, 종교계 동향을 광범위하게 불법 사찰한 정황이 당시 작성된 문건을 통해 처음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국방위, 동작갑)이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 직후 보안사가 생산한 ‘주요 상황 및 조치사항 : 부마항쟁 관련 군 작전 및 조치’ 문건을 필사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3급 군사기밀이던 해당 문건은 최근 비밀해제가 완료됐다.

문건의 내용을 살펴보면, 정당, 교수층, 학생층, 학부모, 종교인 등으로 구분해 각계 동향을 보고했다. 교수들은 ‘4․19나 계엄에 대한 진의를 모르는데 (부마항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며 ‘가정ㆍ사회ㆍ학교가 공동으로 인식시킴이 필요’하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부마항쟁을 주도한) 부산대학교 학생은 가정․사회교육이 잘못’이기 때문에 ‘근원을 발본색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종교인들은 ‘일반’ 종교인과 ‘문제’ 종교인을 구분해, 일반 종교인은 ‘각종 종교행사 사전허가에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당시 보안사는 확인했다. 또한, 문제 종교인들을 통해서 ‘학생들 의사를 고위층에서 반영 못하도록 요망’한다고도 했다.

이 문건의 ‘학생 소요에 대한 여론’ 중 ‘김상진 의원 동향’이라는 부분에서는 당시 보안사가 신민당의 한 ‘지구당 부위원장’을 통해 김상진 의원의 발언을 확인한 내용도 있다. 김상진 의원은 신민당 부산 지역 의원이자 당내에서 김영삼 의원 등 주류에 대항했던 비주류계 의원이었다.

문건에 적시된 김상진 의원의 발언은 “부산 사태 발생 책임은 김영삼에게 있다”, “부산 사태는 데모가 아니라 폭동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온 국민이 단합해야 한다. 계엄 선포는 국가적 차원에서 잘했음” 등이다. 수 만명의 학생과 시민이 수일동안 참여한 민주화운동을 평가절하한 발언이었다.

또, 문건에서는 “이철승이 불원(머지않아) 당권을 잡게 될 것이고, 이철승을 지지한다”는 김상진 의원의 발언도 적시되어 있는데,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대여 투쟁성이 강했던 김영삼 대신 박쥐 같이 여야를 기웃거리며 정권에 협조적이었던 이철승을 신민당 총재로 선호했다.

이철승은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의 지원을 받아 1976년 5월 범서방파 김태촌 일당이 일으킨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 난동 사건’을 통해 김영삼을 제치고 당권을 잡기도 했다. 당시 보안사에서 동향을 파악했던 김상진은 이러한 이철승과 친밀했던 신도환계로 분류된 인물이었다.

1979년 부마항쟁 직후 각계의 동향을 사찰했던 국군보안사령부는 이후 10․26 사태와 12․12 군사반란,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등 군사반란을 주도했다. 1990년 윤석양 이병 사건을 계기로 국군기무사령부로 전환되었다가, 최근 세월호 민간인 사찰과 계엄 문건 작성 논란으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되었다.

김병기 의원은 “우리 군의 불법적 정치개입을 역사적으로 드러낸 문건의 내용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새롭게 개편된 안보지원사뿐만 아니라, 군 전체가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철저한 정치관여 금지 원칙을 준수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glfh200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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