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문재연의 외교탐구] 한 언론인의 죽음으로 흔들리는 북미협상
뉴스종합| 2018-10-21 10:25
[사진=게티이미지]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한 언론인의 죽음으로 한반도의 운명이 뒤흔들리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자국 공관에서 벌건 대낮에 살해당한 자말 카슈끄지에 대한 얘기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당국은 20일(현지시간)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가 터키주재 사우디영사관에서 피살 당했다고 공식인정했다.

카슈끄지의 죽음이 한반도 정세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유럽순방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카슈끄지의 피살사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카슈끄지의 피살을 공식인정한 시점에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초에나 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북미대화에 집중할 만한 외교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시 말하면 북미대화가 미국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카슈끄지 피살사건은 북미대화의 장기화를 유발할 파급력을 갖고 있다. 당장 미국이 오는 11월 이란의 원유수출을 전면봉쇄할 예정인 상황에서 사우디에 대한 제재가 가해진다면 유가 폭등으로 전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비단 석유와 무기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 사우디의 독특한 동맹구조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제경찰’ 입지를 바닥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핵협상을 진전시키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게 당장의 이익이다.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을 이달 말 중에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대화기조’에 대한 현상유지를 하겠다는 의미다. 협상을 진전시키려면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디테일의 악마’를 풀어야 한다. 북한은 제재완화와 종전선언을 상응조치로 요구하고 있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완화의 전제조건은 비핵화라는 입장을 유엔총회 계기 기조연설에서 밝혔다. 6ㆍ12 북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추가 핵ㆍ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가시적 위협도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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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슈끄지 피살사건은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문제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은 늘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해왔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모순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동안 국제사회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수용한 이유는 정책에 나름의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교영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횡포가 계속되면 될 수록 국제사회는 미국에서 벗어나 새로운 안보체계와 무역질서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국내비판 여론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도 딜레마에 놓인 미국의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북한 관영매체 우리민족끼리는 20일 ‘민심의 분노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는 제목의 논평에서 “미국 대통령이 ‘우리의 승인없이 아무것도 못한다’며 남조선 당국을 노골적으로 압박해 나섰다”고 비난했다. 북한은 6ㆍ12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실무 당국자들을 분리대응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비난은 극도로 자제해왔다는 점에서 이번에 ‘미국 대통령’을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핵협상이 미국 대외정책의 후순위로 밀리자 전략변화를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 정부일 수밖에 없다. 당장 연내 종전선언과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이 뒤로 밀릴 형국이다. 핵심 당사자인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지 않으면 연내 종전선언은 의미가 없어진다. 제재 완화 및 면제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조가 없으면 남북경협을 추진할 수 없다. 남북관계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해야 한다고 하지만, 무엇 하나 우리 뜻대로 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결국 한반도 정세는 국제사회라는 큰 틀에서 풀어야 한다. 그렇지만 카슈끄지 피살사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많지 않다. 멍하니 방관만 할 수 없는 노릇이건만, 마땅한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플랜 B’에 대해 고심하는 것이다. 통상 외교전문가들은 국제사회의 돌변변수를 고려해 목표시점을 공식화하지 않는다. 정치인을 중심으로 ‘유엔총회 계기 남북미 종전선언’에 대한 구상이 공론화됐을 때도 외교관들은 “연내 종전선언을 목적으로 한다”는 판문점 선언의 항목만 반복했다. 돌발변수가 많은 국제사회의 특성상 예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정책을 짤 때 ‘최악의 경우’도 고려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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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봐야 한다. ‘연내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를 2020년까지 이룰 수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협상이 결렬된다면?’

남북관계를 잘 관리했는데도 외부요인으로 인해 대화모멘텀이 깨진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우리나라의 외교안보ㆍ경제 이익에 부합하는가. 비관론이 아니다. 제재완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낙관론이 만연한 만큼, 반대상황에 대한 토론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위기상황에 대응할 능력을 키우고 우리가 지향하는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

munja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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