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데스크칼럼] 나는 늙어가는 암고양이가 좋다
뉴스종합| 2018-10-31 11:17
지금은 사라진 신촌의 한 헌책방에서 산 책 중에 책상에 두고 간간이 보는 책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고 안자이 미즈마루가 그린 ‘후와 후와’란 그림책이다. ‘후와 후와’란 고양이 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나 뭉개구름이 가볍게 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하루키는 이 어른을 위한 그림책에서 “나는 온 세상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지상에 사는 모든 종류의 고양이 중에서도 늙고 커다란 암고양이를 가장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책에는 그가 왜 특별히 늙은 암고양이를 좋아하는지, 하루키 작품에는 왜 고양이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지 알 만한 실마리가 들어있다.

하루하루 행동이 굼떠지는 우리집 고양이를 보면, 하루키의 늙은 암고양이가 겹쳐진다. 고양이의 시간은 6,7세면 중년에 속하고 이때부터 노화가 시작되는데, 녀석은 그 나이를 지나는 중이다.

우리집 암고양이를 만난 건 5년 전이다. 사정상 떠 맡게 된 게 아예 눌러 살게 된 경우다. 1살 때의 녀석은 정말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처럼 새까맸다. 꼬리가 길고 눈동자만 연한 노랑색을 띤 녀석은 지나치게 활동적이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그닥 우호적이지도 않았던 우리 가족은 녀석 때문에 종종 티격태격했다. 사는 곳을 옮긴 탓도 있지만 혈기왕성한 때인만큼 쇼퍼와 벽지가 뜯겨나갔고, 여기 저기 뛰어오르는 통에 툭하면 물건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늘어진 물건을 잡아채는 날래고 날카로운 야생의 본능에 옷과 두루마리 휴지도, 화분들도 남아나지 않았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녀석과 우리는 서로 적응해갔다.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찾는 대상이 됐고, 휴가철이나 명절 때면 녀석 걱정이 먼저였다. 녀석 역시 놀라운 후각으로 멀리서도 주인을 구별해냈고, 알람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침마다 깨우는 일을 무슨 사명감처럼 해내고 있다. 녀석은 거의 하루 종일 잔다. 몸을 말고 자는 건 기본. 옆으로 누워 베개를 배고 자거나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자는 모습은 마치 사람같다. 그래도 가장 사랑스러운 건 옆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붙어 앉아 잘 때다. 포근한 털, 들쑥거린 숨이 닿을 때면 묘한 행복감이 차오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생에 고양이를 더하면, 그 합은 무한대가 된다 했다.

고양이만큼 인간의 박해와 애정의 부침이 심했던 동물은 사실 드물다. 고대에서 중세 초기에는 쥐를 잡는 능력 때문에 환대를 받았지만 13~17세기는 수난시대였다. 악마의 화신으로 몰려 수없이 희생됐는데, 고양이 크기가 중세를 지나면서 작아진 게 박해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지금은 그야말로 고양이 전성시대다. 하루가 멀다하고 고양이 관련 책들이 나오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고양이를 이해하려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고양이는 아직 진정한 가축이 아니다. 인간의 요구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하는 중이다. 1000만 반려동물 시대라지만 아직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키우는데 드는 각종 비용과 시설에 대한 거부감도 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역시 이들과 소통하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보면 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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