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의찬미’비극을 뛰어넘은 사랑이야기, 끝까지 불꽃 같았다
엔터테인먼트| 2018-12-05 11:51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사의 찬미’, 식민 시대 두 청춘 남녀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김우진과 윤심덕. 이들에게는 일본 작가 아리스마 다케오의 책이 큰 위안이 되었다. 다케오의 삶으로부터의 도망은 살고자 한 것이었다. 가장 자신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뿐이었으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다운 삶을 살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대는 암울했고, 청춘은 슬펐다. 그럼에도 사랑은 피어났다. 단 3일간 안방극장을 찾아온 SBS TV시네마 ‘사의 찬미’는 그 어떤 장편드라마 못지 않은, 깊고도 묵직한 여운을 남기며 4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사의 찬미’는 조선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신혜선 분)과 그의 애인이자 천재극작가인 김우진(이종석 분)의 일화를 그린 작품. 실존 인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그 동안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콘텐츠로 수 차례 제작됐을 만큼 특별한 매력을 품고 있다. 이것이 ‘사의찬미’라는 이름의 드라마로 재탄생해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일제강점기, 동경 유학생이었던 김우진과 윤심덕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렸다. 그러나 이들은 둘만의 사랑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김우진에게는 대쪽 같은 아버지와 사랑 없이 결혼한 아내가 있었고, 윤심덕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던 것. 이에 김우진은 일부러 윤심덕과 거리를 두려 했다. 자신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도 알렸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을 향한 압박은 더 커져만 갔다. 김우진은 조국 독립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이 한스러워 글로나마 뜻을 표현하려 했다. 윤심덕 역시 우리말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라면 가리지 않고 올랐다. 그러나 그들에겐 암울한 시대로 인한 아픔, 아픈 손가락처럼 결코 베어낼 수 없는 가족의 존재만 무겁게 다가올 뿐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삶’을 위해 ‘죽음’을 택했다. 김우진은 온 힘을 기울여 쓴 희곡 한 편을 남긴 채, 윤심덕은 ‘사의찬미’라는 노래 한 곡의 녹음을 끝낸 후 함께 관부연락선 덕수환에 올랐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아닌, 각자의 호 김수산과 윤수선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둠이 내린 밤, 마지막일지도 모를 춤을 추고 서로에게 입을 맞춘 뒤 함께 사라졌다.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사의찬미’는 100여년 전 이 땅의 가장 암울했던 시대, 그로 인해 누구보다 아팠던 청춘들, 그 안에서 피어난 붉은 꽃처럼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을 서정적인 스토리와 감각적인 연출, 영상미를 통해 고스란히 담아냈다. 특히 윤심덕과 김우진의 일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기존의 콘텐츠들과 달리, 김우진의 작품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두 청춘 배우 이종석, 신혜선의 연기도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이종석은 우수에 젖은 눈빛만으로 죽음도 불사한 사랑의 깊이를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등 안정적인 연기력과 완급 조절을 통해 시대극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신혜선은 립싱크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스토리에 맞춰 고조되는 윤심덕의 감정 변화를 잘 담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더했다.

100년 전 이 땅은, 나라 잃은 슬픔으로 그 어떤 곳보다 암울했다. 그 시대를 살던 청춘들은 아팠다. 그럼에도 예술과 사랑은 피어났다. 2018년을 사는 우리에게 100여년 전 시대의 슬픔, 청춘의 아픔, 진흙 위 연꽃처럼 피어난 예술,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남겼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소? 아니요, 그러나 死를 바라고 있소. 참으로 살려고”(1926년 시 ‘死와 生의 이론’)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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