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프리즘] 적폐란 단어부터 교체하길
뉴스종합| 2019-01-02 11:46
삼인성호(三人成虎)와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의 향연으로 새해 벽두를 맞이하는 기분은 개운치 않다. 청와대냐 자유한국당이냐, 어느 쪽이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서 승기를 잡았는지를 따지는 건 부질없다. 필부의 눈엔 조국 민정수석과 나경원 원내대표가 특정 해에 같은 학교ㆍ학과에 입학한 사적 인연이 악연이란 점만 부각했다.

찜찜한 건 불안해서다. 이 정권은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심이 퍼진다. 정치공세 차원의 프레임에 걸려 들었단 걸 감안하더라도 씻은 듯 빠져 나오진 못하고 있다. 권력의 핵심부를 바라보는 눈을 차갑게 하는 요인이다.

정치는 저급함에서 발을 뺄 수 없는 게 숙명이라는 점이 명징(明徵)하다. 대통령의 성정(性情)을 본다. 민간인의 뒤를 캐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이들을 제쳐뒀던 이전 정권의 음습함을 재연할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공공기관장을 포함한 요직을 전문성 없는 정권 공신에 나눠준 구태까진 벗지 못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던 JP의 일갈은 육중한데, 그걸 깨닫기까진 적잖은 수업료가 필요한 모양이다.

발등의 불인 정치 이슈는 조국 수석의 개인기에 맡긴다 쳐도 실업(實業)인 경제를 보는 정권의 시각이 아쉽다. 외교쏠림에서 벗어날 조짐인 건 반길 일이다. 다만, ‘언론 탓’하는 프레임을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마지막 날, 여당 지도부 오찬에서 “경제 실패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아전인수ㆍ침소봉대가 언론의 특이체질이라고 백 번 양보해도 엄중한 숫자를 갖고 장난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경제가 튼실한데 부실하다고 쓸 순 없단 얘기다. 더구나 대통령이 소비는 견조하다고 강변했지만, 서민들의 지갑은 꽁꽁 얼었고 작년 9월을 기점으로 둔화하고 있다.

금융부문은 더 걱정이란 목소리가 들린다. 무엇보다 서민금융ㆍ사회적금융이란 이름 아래 세금처럼 걷어가는 자금이 부담이다. 돈 갚을 능력이 없는 1000만원 미만 소액채무자가 빚을 잘 변제하면 남은 채무를 탕감해주고, 지금도 적자에 허덕이는 사회적기업에 올해 6500억원을 지원키로 한 건 ‘퍼주기’에 다름 아니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이런 선심성 정책은 생활 속 적폐(積弊)를 양산한다. 생색이야 진보정권이 내면 되지만, 시장경제 질서는 산으로 가게 된다. 적폐청산을 미션으로 삼은 정권이 할 일은 아니다.

첨언하자면, 적폐를 대체할 단어를 찾아보길 권한다. 박근혜 정권이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꺼낸 말이 적폐다. 대중에 익숙지 않은 단어인데, 청와대의 당시 고위 관계자 발언으로 참사 일주일이 되는 날 언론에 소개돼 삽시간에 퍼졌다. 되짚어보면 민주화 이후 노무현 대통령만 제외하고 모든 대통령이 적폐를 언급했지만 박근혜 정권의 전매특허처럼 돼 버렸다. 문재인 정권은 이 단어를 가져다 쓰는 데 치열한 고민을 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인적청산만을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이에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려면 늦었지만 다른 말을 제시하고, 의도의 순수함이라도 지키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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