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양승태 소환] 피의자 전락 불명예…‘제왕적 대법원장’ 구조 화 불렀다
뉴스종합| 2019-01-11 09:31
-‘고등부장 승진제’ 유지, 인사권 행사로 사법부 관료화 심화
-‘상고법원 도입’ 무리하게 추진하다 권한 남용 사태 촉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재판의 독립 없이는 법원이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민주주의도 존속할 수 없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의 부당한 영향도 받지 않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2011년 9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는 양승태 신임 대법원장의 취임사가 울렸다. 법원의 독립을 강조했던 그는 7년 반 만에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정치권과 ‘사법거래’를 한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6년의 재임 기간 동안 ‘사법부 관료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장은 3000여 명에 달하는 판사 인사권 행사는 물론 예산 집행과 법원 행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핵심은 인사권이었다. 판사가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비판이 일자 법원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제도 폐지를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그동안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던 소수의 선택받은 판사들이 고등부장에 발탁됐다. 행정업무와 재판업무를 번갈아 맡으면서 대법원장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정치권 역학관계에 밝은 인사들이 자연스럽게 대법관 후보군을 형성했다.

이번 사건의 주도자인 임종헌(60·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물론, 공범으로 지목된 박병대(62·12기)·고영한(64·11기) 전 대법관 역시 같은 이러한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박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고 전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다. 임 전 차장도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대법관에 올랐을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재판 방향을 왜곡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용덕(61·12기) 전 대법관과 권순일(60·14기) 대법관 역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상고법원’ 입법을 자신의 치적으로 정하고 이 제도 도입에 사활을 걸었다. 무리한 입법 로비는 화를 자초했다. 2014년 의원입법으로 상고법원을 도입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청와대의 반대기류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미온적인 반응에 직면했다. 이 과정에서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가 이뤄진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청와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대법원에 계류 중인 여러 사건이 정부와의 협상 대상이 됐다.

결국 법원 내부에서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권력구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됐고, 2017년 3월 법원 내 연구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학술대회를 열었다. 법원행정처는 사문화된 ‘연구모임 중복가입 제한 규정’을 들고 나와 이 행사를 축소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행정처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탄희 판사가 지시를 거부했고, 언론 보도를 통해 대법원이 일선 판사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검찰 조사를 통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등 재판을 정치권과 거래하고, 법원 정책에 비판적인 일선 판사를 사찰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에 관해 진술할 예정이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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