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관습과 억압에 저항했던 흔적들…현대사회에 눈뜬 ‘리얼리즘 미술’
라이프| 2019-02-20 11:13
국립현대미술관 ‘세상에 눈뜨다’, 국제갤러리 ‘민정기 개인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전시 전경. [MMCA 제공]

정치지형의 변화 때문인지 리얼리즘 미술을 전면에 내세운 전시가 한창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가, 국제갤러리에서는 민정기 개인전 ‘Min Joung-Ki’가 열리고 있다. 갑자기 생겨난 트렌드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묵직한 담론을 꺼내는 선 굵은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미술, 현대사회에 눈을 뜨다=아시아의 근대화는 식민지와 탈 식민, 독재와 민주화를 거치며 이념 대립, 전쟁, 민족주의 등 질곡의 역사를 차례로 지나왔다. 그렇다고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같은 길을 걸었던 것도 아니다. 제국주의를 주창한 일본과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역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그것만큼 다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사이, 아시아 예술가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관습과 억압에 저항했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내용에선 부조리에 목소리를 높였고, 형식면에선 다양한 시도를 했다. 새로운 미술운동이 집중적으로 탄생한 시기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싱가포르국립미술관, 일본국제교류기금 아시아센터가 공동 주최, 4년간 관련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끝에 탄생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 미얀마, 캄보디아 등 아시아 13개국 작가 100여 명의 작품 170점이 나왔다.

전시는 크게 세 섹션으로 나뉜다. 각 섹션마다 미술에서의 형식적 변화, 예술가들의 도시에 대한 태도, 미술의 사회적 역할 등 집중하는 분야가 다르다. 전통적 조각과 조형 원리를 거부한 작가의 퍼포먼스(이승택 ‘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부터 도시화로 인해 더욱 극명해진 사회적 모순의 비판(오윤 ‘마케팅 I : 지옥도’) 등 내용과 형식에서 ‘관습’에 저항한다. 한국의 ‘민중미술운동’, 태국의 ‘태국예술가연합전선’, 필리핀의 ‘카이사이한’등 작가들의 집단적 연대도 살펴본다.

핵심은 ‘현대사회에 눈뜬 미술’이다. 도망가지 않고 아픈 현실을 직시했던 작가들의 작업은 그만큼 통렬하고 아프다. 전시는 5월 6일까지이며, 이어 싱가포르국립미술관에서 순회전을 갖는다.

▶민중미술, 시장에서 가능성은=민중미술의 시장성 탐구일까. 국내 최대 상업 화랑인 국제갤러리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자 민족미술협의회 출신의 대표적 민중화가 민정기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지난해 4월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배경으로 자리한 산수화 ‘북한산’으로 최근 유명세를 탄 작가다.

민정기 화백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인문학적 고찰과 민중사관이 녹아 있는 산수풍경과 산수화 지도를 그렸다. 이번 전시엔 산세와 물세 등 지형적 요소에 더해 도심이 등장한다. 청계천, 사직단, 세검정 등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생생한 풍경이 과거의 모습과 병치돼 독특한 풍경화를 완성한다. 하나의 작품에 여러 시점과 시간이 섞여 있다. 2016년 작 ‘유 몽유도원’은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 이미지에 부암동 현재 풍경이 더했다. 부암동의 과거와 현재가 한데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 흑백 판화를 비롯해 구작 21점과 신작 14점이 나왔다. 국내 최대 화랑으로 해외 거장을 주로 소개하는 국제갤러리에서 민중미술을 전시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이한빛 기자/vi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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