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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주근 CEO스코어 대표]성별 다양성, 30%의 힘…다음은
뉴스종합| 2019-02-22 11:11
서지현 검사의 용기있는 미투의 시작은 연예계, 문화계를 거쳐 체육계까지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양성평등에 대한 자각을 일깨운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이 사건의 시작은 물론 개인의 위대한 용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한 환경의 구조적 배경도 중요하다. 어느 한 조직에서 특정 집단의 질서 논리와 문화 때문에 다른 소수 집단의 권리와 문화, 때론 인권까지 묵살되는 것에서부터 이 소수가 다양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은 조직구성 비중이 일정 비율을 넘길 때인데, 그 최소한은 30%이다.

2018년 3월 검찰 자료에 따르면 검찰 내 여성검사의 비율은 ▷2009년 전체검사 1699명 중 315명으로 18.5% ▷2014년 1977명 중 530명으로 26.8% ▷2016년 2052명 중 593명으로 28.9% ▷2018년 2100명 중 627명으로 29.9%이다. 우연의 일치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30%의 힘이 서지현 검사의 용기의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대학 통계자료를 통해 1980년부터 2018년까지 대학 재학생의 남녀 재적 학생 비중의 변화를 보면 여학생의 비중이 30%를 넘어서는 시기가 1987~1990년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우선 대기업들이 대졸 여성공채를 하기 시작한다. 페미니스트 운동이 본격화되는 시기도 이 때이다. 국내 대기업 최초의 여성임원은 그 이전에 생겼지만 의미있는 수준의 여성임원 비중은 공채로 입사해서 20여년이 지나 임원으로 승진하기 시작하는 2010년대 초부터이다. CEO스코어에서 국내 500대 기업과 30대 그룹 여성임원의 통계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부터 수치를 보면 2.1%부터 시작해서 2018년 3분기 기준 3.5%로 증가했으며 이번 2019년 임원인사에서 승진한 여성임원들을 포함하면 올해는 3% 후반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매출액 기준 상위 500대 기업들의 정규직 직원에서 여성의 비중은 지난 2018년 3분기 말 기준으로 평균 26.2%로 임계치를 향해 다다르고 있다. 문제는 양적인 변화가 반드시 질적인 변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순한 산술적 계산으로 보면 전체직원 중 여성직원의 비중 만큼 여성임원들도 비슷한 비율이어야 하지만 실제는 십분의 일 수준이다. 남성직원 중 남성임원 비중은 1.2%이나 여성직원 중 여성임원의 비중은 0.12%에 불과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양적인 임계치 이상의 비중 변화로 잠재된 문제들이 표출되고 소수조직의 목소리는 낼 수 있지만 조직내의 권력구조, 의사결정 구조 및 의사소통의 방법, 인사평가제도 등의 본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리더계층의 양성평등과 성별 다양성의 비중을 높이지 않고서는 어렵다. 이러한 진정한 변화가 없을 때 우리는 21세기 하고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첫 여성 OO’나 ‘여전히 뚫리지 않는 유리천장’ 같은 수식어가 달린 기사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성별 다양성의 확보는 한쪽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고 상생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사회와 기업들의 지속가능 성장과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이다. 사회의 리더계층과 기업의 임원에서 최소 30%의 성별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 미투와 같은 권력구조형 문제를 해결하고 4차 산업시대에 기업들이 유연한 전략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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