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현장에서] 이미선 ‘주변인’ 청문회
뉴스종합| 2019-04-17 11:17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속기록을 뒤늦게 읽었다. 청문회가 ‘주식거래’에 초점이 맞춰질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주식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혐의로 기소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잔상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낙마한 사례는 더러 있지만,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후보자가 거액의 주식 보유 내역을 설명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미선 후보자는 ‘재판 당사자인 회사의 주식을 거래했다’는 언론 보도가 잘못된 점은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구체적인 거래 내역에 관해서는 ‘남편이 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주식거래에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정리가 된 것은 후보자의 해명이 아니라, 배우자가 온라인을 통해 올린 여러 건의 게시물을 통해서였다. 인사청문회를 지켜봤던 정치권이 ‘부적격’에서 ‘큰 문제는 없다’는 쪽으로 선회하는 혼선이 빚어진 것도 후보자 답변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배우자가 알아서 주식거래를 했다면, 그 내역을 물어서 답변하는 게 인사청문회에 응하는 후보자가 취할 태도였다.

이 후보자는 금태섭 의원이 질의한 난민 문제에 대해서도 답을 피했다. 최근 난민이나 이주민에게 어느 정도의 기본권을 인정할 것인가가 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작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답을 하지 않았다. 청문회 질의를 하던 박지원 의원의 말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 이것도 답변을 유보하고, 특히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법 이것도 답변을 유보하면 동성혼 찬성합니까? 최저임금, 종교인 과세, 문제가 되는 것은 전부 답변을 유보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아무 소리 안 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면 속기록에 안 나와요.” 심지어 이춘석 의원이 “후보자가 이 자리에 서게 된 이유를 설명해 보라”고 한 정도의 질문에도 “후보자 입장에서 지명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묻고 듣는다는 ‘청문회’라는 회의 이름이 무색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후보자인 ‘판사 이미선’이 헌법재판관 자질을 갖췄는지는 전수안 전 대법관이 직접 나서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일종의 ‘신원보증’을 서는 것으로 갈음됐다. 후보자는 가만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힘들게 나서 대신 답변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후보자가 여성이라서, 그동안 ‘주류’가 아니어서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전수안 전 대법관은 ‘인사청문 과정이 여성 후보에게 유독 엄격하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 후보자였던 이유정 변호사도 15일 이 후보자가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겪고 있다면서 ‘제가 당했던 사회적 비난과 조롱, 근거없는 의혹제기가 상당 부분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에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연 대한민국 검찰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동기로 대통령이 지명한 헌법기관 후보자를 기소했을 지는 의문이다. 2011년 조용환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무려 8개월 동안이나 국회에서 정쟁을 벌인 탓에 특별한 사유 없이 낙마했다. 당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임을 몇 퍼센트 확신하느냐’는 한나라당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긴 시간 동안 후보자로 지내느라 생업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던 조용환 변호사는 남성이었다.

이미선 후보자는 민주당 추천이었던 조용환 변호사와 달리 대통령 지명 인사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 없이도 임명이 가능하다. 헌법재판에 전문성을 갖춘 어느 법조인은 “그동안 헌법재판관이 됐던 분들 중 대부분은 준비 없이 부족한 상태로 왔다. 그래도 헌재가 지난 30여년간 눈부신 성과를 냈다”고 했다. 이 후보자가 정말 좋은 재판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재판관 구성에 여성 비중이 더 늘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한다. 3분의 1도 적다. 절반 이상이 돼야 한다. 다만 ‘비서울대, 여성’ 외에 어떤 점이 훌륭한 것인지 묻는 게 그렇게 부당한 게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성차별은 더더욱 아니겠다.

정부부처 장관은 중간에 실책을 하면 교체라도 한다. 일단 외형적 요건을 보고 임명해도 얼마든지 주권자가 통치권자에게 의사를 전달해 ‘반품’이 가능하다. 하지만 헌법재판관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임명되면 6년간은 임기가 보장된다. 단 한 장의 표도 얻지 않은 헌법재판관에게 국회 입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큰 권한을 주고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여론에 떠밀리지 말고 소수자를 보호하라”는 그 한가지 때문이다. 당연히 주권자는 후보자가 어떤 사람인지 물을 권리가 있다. 이것을 ‘부당한 공격’이라고 여기는 것은 주권자의 요구를 무시하는 처사다. 심지어 과자 한 봉지를 살 때도 어떤 제품인지 알고 산다.

좌영길 사회섹션 법조팀장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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