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프리즘] 교보생명 FI, 투자와 투기 사이
뉴스종합| 2019-04-23 11:15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의 물을 말려서 고기를 잡는다. 중국 진나라 ‘여씨춘추’에 나오는 사자성어다. 뜻은 이렇다. ‘연못의 물을 다 퍼내고 물고기를 잡으면 다음해엔 고기가 없을 것이고, 숲을 태워 사냥하면 다음해엔 짐승이 없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지 않는 욕심과, 미래를 위한 준비. 자본시장에선 전자를 ‘투기’라 부르고 후자를 ‘투자’라 한다.

교보생명 사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욕심’이다. 자본시장에서 더 나은 부를 향한 욕망은 존재 이유 그 자체다. 교보생명 논란 중심에 선 사모펀드(PEF) 어피니티 등 FI(재무적 투자자)의 수익추구 자체가 문제 될 리 없다. 문제는 욕망의 수위다. 연못 물을 다 퍼내면서까지 고기를 잡으려는 욕심이다. 신창재 회장 측과 FI 측은 풋옵션 행사가격 등을 두고 긴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FI측은 주당가치를 40만9000원으로 평가했다. FI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하면서 2017년 6월 30일부터 1년을 기준으로 삼았다. 당시 생보사 주가는 2017년 10월 최고조에 이른 뒤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FI 측이 실제 풋옵션을 행사한 10월을 기준으로 PBR(주가수익비율)을 평가해보면 현재 FI 측이 적용한 0.93배의 절반 수준으로까지 떨어질 수 있다. 풋옵션을 행사한 10월 당시 삼성생명은 0.55배, 한화생명이 0.33배 등으로, 5개 상장사 평균 PBR은 0.5배였다. 이를 적용한다면 주당가치는 22만원 수준이 된다. 즉, FI 측이 실제 풋옵션을 행사한 10월 시점이 아닌, 생보사 PBR이 최고점이던 2017년 6월~2018년 6월로 기간을 정하면서 2배 가까운 간극이 벌어졌다.

비교대상 기업군도 논란이다. FI의 풋옵션 행사 평가를 담당한 안진회계법인은 과거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 매각사로 참여했을 당시 한화생명을 비교대상 기업으로 선정했다.

이번 풋옵션 행사에는 5개 상장사 중 삼성, 한화, 오렌지라이프를 비교대상으로 삼았다. 미래에셋생명이나 동양생명은 제외했다. 업계에선 규모나 점유율 등을 감안할 때 오히려 오렌지라이프보다 미래에셋, 동양 등이 더 교보생명에 가깝다고 평가한다. 일각에선 기업가치가 높은 기업만 의도적으로 비교대상군에 포함시킨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올초 교보생명이 기업공개(IPO) 방침을 밝히면서 증권가에서 추정한 주식가치는 주당 20만원 초반 정도다. 우호주주가 되겠다며 옵션계약을 맺었던 FI들이다. 약속 한 때 상장을 하지 못한 신 회장의 책임을물을 수는 있다. 아무리 그래도 경영권을 가지지도 않았으면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얹어달라는 건 ‘억지’가 아닐까?

교보생명은 예측할 수 없는 혼돈에 접어들고 있다. 중재에 들어가고 법적 대응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60년 민족기업 교보생명이 투기자본에 넘어가지 않도록 지켜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FI를주도하는 어피니티는 사모펀드다. 투자에서는 이익을 볼 수도, 손실이 날 수도 있다. 만약 교보생명에만 집착해 연못 물까지 마르게 한다면, 과연 앞으로 누가 이들과 손을 잡으려 할까? 

김상수 IB금융섹션 IB증권팀장 dlcw@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