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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홍콩시민의 이상향 대한민국
뉴스종합| 2019-06-26 11:18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을 갓 지나 보낸 6월, 홍콩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렸다. 우리 휴대전화기를 쓰고, 우리 가수의 율동을 따라 하는 타국민의 모습에는 이미 익숙하지만, 타국에서 들려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익숙하지는 않다.

한차례 광풍이 지나갔고 홍콩정부는 무리한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대중을 설득했지만, 홍콩시민들은 더 나아가 입법부와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제와 보통선거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이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에 맞서 1987년도에 이미 성취한 민주주의의 쌀과 김치 같은 필수 요소들이다.

실상을 외부에 전달해줄 힌츠페터와 그를 안내해 줄 김사복이라는 택시운전사 없이도 현장의 분위기는 SNS를 타고 생생하게 시차 없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 있는 홍콩 출신 유학생들은 한국어 실력을 총동원해 바른미래당이라는 제3 교섭단체의 최고위원에게까지 간절한 도움의 요청을 했다. 결국 바른미래당은 신속히 대변인 논평을 통해 당차원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 관련 시위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는 옳고 그름에 대한 반복적인 고독한 결단의 과정이다. 항상 어떤 일을 해야 하는 논리 못지않게, 하지 않아야 하는 논리가 존재하고, 그래서 철학이 없으면 우왕좌왕 속에서 국민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인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홍콩의 자치권과 중국의 관할권이 서로 부딪치는 상황에 어느 한 쪽의 편을 들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절대적 가치로 놓고 투쟁해 왔던 민주당이 국익을 논하며 홍콩시민들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는 것도 의아하다. 거짓과 선동으로 점철되었던 광우병 시위나 사드 전자파 선동을 되새겨 보면 언제부터 민주당이 타국과의 관계나 국익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외교를 다루었는지도 의문이다. 거대양당의 궤변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정의당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의 무반응 또한 이례적이다.

종종 먼저 남을 돕다가 곤란한 상황을 겪어 나서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구할 때 사람의 인상착의 등을 특정해서 구체적으로 요청하라는 교육을 한다. “저기 빨간 조끼 입으신 분, 좀 도와주세요.” 이렇게 말이다.

홍콩 시민들도 작은 도시국가의 외침에 보편적인 세계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고 있고, 그들의 처지에서는 가열찬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한민국은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만 알아챌 수 있는 노래로 그들의 다급함을 전달하는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그들의 외침은 “도와줘요. 한국”이다.

그 간절한 외침을 외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에 나름의 가격표를 매긴 것이다. 영어에서 ‘invaluable’이라는 단어는 in- 이라는 접두사 때문에 ‘가치가 없는’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실제로 ‘invaluable’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의 의미이다. 보편적으로 ‘invaluable’해야 하는 숭고한 가치에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보잘것없는 상대적인 가치가 돼버린다.

중국이 우리의 주요 교역국이라 보복이 우려되니 지지하지 말자는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과연 포항제철의 자본을 위해 대일 청구권을 활용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일협정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맞는지 되묻고 싶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우리를 싫어하고 눈을 흘기는 친구들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민주주의의 절대적 가치를 아는 새로운 친구들이 늘어나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 과정을 통해 어디에서나 탄압에 맞서 반복적으로 그 세를 불려왔고, 그 절대적인 도덕적 우월함 속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맞서왔다.

1980년 광주의 고립된 외침이 여럿의 목소리가 되어 민주화로 이어진 것처럼 2014년 최루액을 우산으로 받아내며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은 현재 확대일로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대한민국의 모든 정파와 시민에게 비록 지금까지 그 과정에 관심을 보태고 지지를 보내지 못했더라도, 앞으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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