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홍길용의 화식열전] 75년 브레튼우즈의 붕괴와 운요호의 귀환
뉴스종합| 2019-07-22 11:36

제 환공(齊 桓公)은 기원전 679년 견(甄)에서 회맹하여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쇠퇴한 동주(東周)를 대신해 중국의 질서를 정한 일종의 국제협약이었다. 이후 진(晉), 진(秦), 초(楚), 오(吳), 월(越) 등으로 패권이 이어진다. 갈수록 회맹에서 패자들은 이른바 질서 유지자의 역할 보다는 자국 중심의 강자의 논리를 내세운다. 후기 패자들은 중국의 중심인 중원보다는, 서쪽과 남쪽의 주변부에서 등장한다. 이들에게 동주는 허울 뿐인 곳이었다. 결국 극단적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무한경쟁이 이뤄지는 전국시대가 펼쳐진다.

서기 117년 로마 황제에 즉위한 하드리아누스는 선제(先帝)인 트라야누스가 활발한 대외원정으로 로마제국 최대 판도를 만들어낸 것과 달리 군사 요충지에 방벽을 구축했다. 브리타니아 북부의 하드리아누스의 벽이 유명하지만, 게르만과의 경계인 라인 강이나 도나우 강 지역, 북아프리카에도 방벽이 지어졌다. 제국을 유지해 온 다양성 존중 전통이 약해지고, 패자로서 로마의 지휘도 도전 받는다. 하드리아누스의 후계자인 아우릴리우스가 사망한 180년 이후 로마는 200연간의 오랜 쇠퇴기를 지나 결국 동서로 분열된다. 로마 이후 유럽은 암흑시대로 불리는 중세를 맡이한다.

꼭 75년 전인 1944년 7월 22일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44개 연합국이 모여 새로운 경제체제에 합의한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헨리 모건소 주니어는 “공동목표의 달성을 위한 모두의 노력, 즉 국제협력이야말로 회원국들의 이익을 지키는데 가장 현명하고 효율적인 방법이다”라고 선언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IBRD), 무역협정(GATT) 등이 이때 만들어진다. 20세기 세계화(Globalization)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1971년 달러의 금태환이 중단됐지만, 세계화의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되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세계화는 더 빨라졌다. 신흥국의 값싼 노동력으로 생산성이 증대되면서 세계경제의 불균형도 개선됐다.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제격차도 빠르게 좁혀졌다.

하지만 신흥국의 소득상승은 임금인상 요인이 돼 생산성에 하락을 가져왔다. 상호보완적이던 선진국과 신흥국의 관계도 경쟁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역갈등의 요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미국 주도의 질서는 한계에 봉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일자리를 빼앗고, 기업들을 털어가는 국가들로부터 국경을 지켜야 한다. 보호정책은 위대한 번영과 힘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라고 밝힌다.

자국 제일주의를 앞세우는 옛 패권국에 계속 칼자루를 쥐어줄 곳은 없다. 브레튼우즈 체제 당시 유럽은 2차 대전의 피해로 속수무책이었고, 소련 등 공산권은 별도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미국의 절대우위 속에서 만들어진 체제였다. 이제 유럽은 하나로 뭉쳤고, 중국은 나름의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충돌을 막을 새로운 질서가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제국주의 블록경제간 충돌이 1차 세계대전이었고, 경제난이 불러온 사상 최악의 비극이 2차 대전이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도발에 나선 것도 이같은 국제질서 변화를 간파한 결과로 보인다. 한국이 더 강해지기 전에 눌러 향후 도발의 빌미를 마련하려는 시도다. 조선의 심장에 함포를 겨눈 1875년의 운요호(雲揚號) 사건이 21세기 한국 경제의 심장을 노린 수출규제로 재현되는 모습이다. 언제 정한론(征韓論)으로 발전할 지 모른다. 임시정부로 출발한 대한민국, 100년만에 다시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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