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스크칼럼] 을씨년(乙巳年)스런 여름
뉴스종합| 2019-07-23 11:28

무더위는 몰려오지만, 우리의 마음은 을씨년스럽다. ‘을씨년’은 바로 ‘을사(乙巳)년’이다. 그 많은 을사년 중에서도 을사늑약(勒約)이 맺어진 1905년을 지칭한다. ‘늑(勒)’은 재갈이다. 강제로 도장 찍은 각서라는 의미이다. 여름 조차 추웠던 바로 그 해이다.

이완용 등 을사 오적(五賊)의 준동 속에 외교권을 박탈당한다. 적(賊)은 외부의 적(敵) 만큼 나쁜, 내부의 역적을 뜻한다.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킨 일제는 1910년 강제병합 이후 36년간 살인, 착취, 말살을 자행했다. 1945년 광복까지 한국민 수백만명이 죽었고, 금, 철, 쌀 등 산업 경제의 근간을 수탈당했으며, 일제의 강제징용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일제는 강제병합을 44년이나 긴 세월 동안 만들었다. 조금씩, 조금씩, 교활하게….

서해 바다 깊이를 잰다는 이유로 운양호 해군함을 몰고 우리 영해에 침범해놓고는 우리 군과 백성의 방어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적반하장 논리로 강화도 불평등 조약을 맺었던 것은 1876년 2월이었다. 신식 총포를 강화도 재래식 무기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요구는 경제였다. 3개항 개항, 일본인 치외법권 인정, 일제 상품 무관세, 엔화 통용 등이다. 경제 불평등은 정치 불평등, 사람 차별, 수탈과 착취로 이어졌다.

44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플랜은 군대 분열, 친일정권 수립, 수탈 경제의 정착, 외교 고립, 완전한 강제병합이었고, 이 단계가 진행될 때 마다, 친일파가 준동했다. 친일파는 강제합병 이후 36년간 더욱 악랄해졌다.

임오군란 과정에서 군의 힘이 떨어지자 일본군의 횡포는 더 거세진다.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 과정에서 친일정권을 세우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일제의 사주를 받은 친일파들은 일제가 청일, 러일 전쟁에서 연승하자 더욱 노골적으로 나라 팔아먹기에 나선다. 나라 잃는 44년간 내부의 적 ‘친일파’와 우리의 분열이 있었고, 한편에선 거국적 의병 활동도 있었지만, 자생력을 도모하려는 정부 차원의 지혜, 대비책, 실천은 거의 없었다.

오욕의 역사 속에 교훈이 다 있다. 해법의 전제조건은 내부 분열세력 엄단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극일론’을 설파하며 국론 통일을 꾀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우리 기업들이 멀티 소싱, 통상의 다변화를 통해 ‘탈(脫)일본화’를 꾀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침략의 역사를 가진 일본 견제가 1945년 일제 패망 이후 줄곳 이어진 아시아외교의 ‘상수(常數)’ 였듯이, 한일 갈등은 장기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아직 독일 만큼 반성하지 않고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외교, 특히 미국과의 친밀도을 높이는 일, 산업통상-국방 분야 역량을 강화하는 일엔 다소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을씨년스런 현 상황을 보면서 ‘정권이 바뀐어도 잘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외교안보’라는 점을 문재인 정부가 분명히 인식하고 지향점을 조정하길 바란다. 아울러 야당 역시 한일전(戰)에서 만큼은 적에 빌미를 제공하거나 ‘내부의 적’이라는 오해를 사는 일을 해선 안된다. 보수도 극일(克日)이어야 한다.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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