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현장에서]“돈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이젠 변해야
뉴스종합| 2019-07-23 11:34

“돈 신경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라.”

학창시절 각자의 집안형편과 무관하게,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얘기다.

빚을 내더라도 자녀 교육에 열을 쏟는 학부모의 애정이 담긴 말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현재의 돈 문제뿐 아니라 미래의 돈 문제에 대해 신경쓰는 것조차 세속적인 것으로 치부돼 왔다. 사회에 나서면서부터 직업에 상관없이 자산관리란 임무가 부여되지만, 정작 이같은 임무를 부여받기 직전까지 금융 기초교육마저 접할 수 없다.

최근 금융투자협회가 다음 학기부터 서울 여의도 고등학교 1학년 정규 과정에 금융교육을 도입하기로 했다. 오는 9월 열리는 첫 학기에는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 부회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등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청년 등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인사들이다.

미래에셋대우는 대명그룹과의 금융교육 업무협약을 통해 초·중·고교는 물론 군부대를 대상으로 특강을 실시하고 있으며, NH투자증권은 은퇴시점 고객을 대상으로 한 ‘100세 시대 인생대학’을 개설한 바 있다.

존 리 대표는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메리츠주니어투자클럽’을 꾸려 직접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금투협은 이번 교육에 대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는 실시하지 않지만, 사전·사후 금융이해력 진단을 통해 교육효과를 검증, 다른 지역 학교로 금융 정규교육 확산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외국에서는 일찍이 청소년 금융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다. 미국에서는 고교 금융과목을 17개 주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고 있고, 영국의 경우 11∼16세 학생에 대한 학교 금융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현실은 처참하다. 주요 공통사회 교과서들을 보면 금융을 다룬 내용은 전체 분량 중 한두 쪽에 불과하다. 금융과 관련성이 가장 큰 과목인 사회탐구 영역의 경제 교과서(선택)에서도 금융은 가장 마지막 단원에 배치돼 시험 범위에서 번번이 제외돼 왔다. 여기에 금융을 바라보는 학교의 눈길도 곱지 않았다.

지난해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이사는 “유튜브에서 내 강연을 본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위한 경제교육을 부탁했지만, 결국 학교 방문은 무산됐다”며 “교장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투기를 가르치면 안 된다’고 불가 입장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최근 금융 유관기관을 중심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다. 금투협 뿐 아니라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5년부터 각 금융기관과 학교가 ‘1사 1교’ 방식의 자매결연을 맺고 체험교육 및 방문교육 등을 제공하는 금융 기초 교육을 활성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도서산간지역을 대상으로 원격영상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KEB하나은행은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 경제뮤지컬을 공연하는 등 각 기관의 창의적인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전세계 금융시장이 신음하면서, 금융에 대한 지식은 각자의 직업과 상관없이 지녀야 할 필수적인 지식으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저성장 시대가 지속되면 마땅한 투자처는 점점 줄어들고, 이에 따라 각자의 자산을 지키기마저 점점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사기 피해자는 고령자에 한정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금융지식이 없는 청소년들이 갓 사회에 진출한 20~30대가 지난해 금감원 집계 보이스피싱 범죄 전체 피해액(4440억원)의 20%(916억원)를 차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자신의 자산을 지키고 올바른 투자방식을 익힐 수 있는 청소년에 대한 금융교육이 이제부터라도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youkno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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