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리즘] 개인(人)은 사라지고 무리(群)만이 남았다
뉴스종합| 2019-10-08 11:18

어느덧 40을 훌쩍 넘어선 ‘꼰대’의 나이다. 그래서일까 혹하는 책이 있었다. 유명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는 ‘90년생이 온다’를 얼마 전 집어 들었다. 90년생의 특징과 이들에 대한 기성 세대들의 오해, 그리고 이들을 직접 조직에서 대해야 하는 관리자들에 대한 조언 등이 담겼다.

기대가 커서였을까. 책을 읽고 나서는 무언가 모를 찝찝함이 남았다. 내용을 떠나 제목 자체가 주는 분절의 느낌 때문이었다. 출생 연도로 너와 나의 무리를 가르는 현 트렌드가 주목받는 현실이 불편했다. 사실 이 또한 기성세대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생 연도로 개개인의 특징이 일반화되고, 이 공식이 널리 호응받기엔 세상이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마치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단정짓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최근 비슷한 동년배, 혹은 연장자인 선배들을 만날 때면 스스로 ‘꼰대’임을 자책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후배 세대들과의 소통에 주저한다. 공연히 ‘꼰대’가 되느니 ‘침묵자’가 되겠다는 수세적 자세다. 역으로 후배 세대들 또한 선배들을 바라볼 때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감히 추측해 본다. 이처럼 무리 짓기는 양자 간 소통은 물론 조직 자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무리가 나누는 건 출생 연도가 아니라 각자의 성향과 기호, 삶을 대하는 자세 등에서 비롯된다 믿는다. 숫자에 불과한 나이와 세대 만에 근거해 무작정 서로를 멀리하고 구분 짓는 모습은 상식적이지 않다. 숫자가 선입견을 낳고, 이 선입견이 벽이 되어 버린다면 세대의 계승에서 오는 역사의 축적과 진보는 가능할 수 없다.

이런 무리 짓기의 양상은 비단 세대간 문제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조국 장관 임명과 검찰 개혁을 화두로 두 무리로 갈린 작금의 대한민국 얘기다. 요즘 지인들끼리의 술자리에서는 정치 이야기, 다시 말해 ‘조국’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는 불문율이 널리 통한다. 그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잣대다. 그간 쌓아온 친분과 개인적 경험의 공유는 설 자리가 없다. 서로의 진영을 확인하면, 하루 아침에 친목을 도모해오던 이들이 돌연 원수가 된다. 단체 메시지방에서 서로의 정치적 성향에 마음이 상해 돌연 퇴장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진솔한 자세로 대화와 소통을 이어가는 건 인간 삶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왜 검찰 개혁이 필요한지, 조국 장관 자녀의 입시 문제가 왜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지에 대한 합리적 토론은 실종됐다. 성급하게 서로의 색깔을 규정하고, 이 선입견은 합리적 소통을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진영 만이 남았다.

난 한 아들의 아버지다. 나의 주장 만이 옳을 수 없으며, 상대의 다른 생각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헤아리라 가르친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 어른들은 어떠한가. 세대와 성별, 지지정당 등을 두고 무작정 상대를 적으로 돌리며, 무리 짓고 있지는 않은가. 서초동에서 벽을 두고 자신 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 모습을 아이들에게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를 그저 직접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라 가르칠 수 있을까. 난감하기만 하다. 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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