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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독단이 인류를 갈라놓는다”…무신론의 부상
라이프| 2019-11-08 11:15
“신무신론의 부상은 대체로 이러한 상호 지식의 확대 덕분에 가능했다. (…)무신론자로서 ‘커밍아웃’하는 것이 훨씬 덜 부담스럽고 덜 위험해졌다.(…)(‘신 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대략 알면 수의 힘은 더 커진다”(‘신없음의 과학’에서)

2000년대 초반, 무신론 운동의 선봉에 선 책들이 미국에서 잇따라 발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2004),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2006)에 이어, 뜨거운 돌풍을 일으킨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2006)과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2007)까지 무신론은 새로운 세상의 이념처럼 번졌다. 여기엔 종교전쟁을 방불케한 9.11테러의 영향이 컸다.

이 무신론 혁명의 기수, 네 기사가 2007년 9월30일 워싱턴 D.C 에서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무신론자국제연합 연례회의에 참석한 걸 계기로 ‘리처드도킨스 이성과과학재단(RDFRS’)이 대담을 마련한 것이다.

저마다 논쟁적인 책을 내고,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반향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모인 이 역사적인 자리에서 이들은 세상이 직면한 종교 문제를 자유분방하게 토론했다.

‘신 없음의 과학’(원제:The Four Horsemen·김영사)은 그날의 대화와 이후 이들의 진화된 사고를 담은 새로운 에세이를 한데 묶은 것으로, 네 사람의 대화 기록으로는 유일하다. 여기에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해제를 썼다.

신 없음의 과학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 / 김명주 옮김김영사

당시 이들이 논의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겸손과 오만의 관점에서 종교와 과학이 어떻게 다른가였다.

진화생물학자인 도킨스는 종교의 오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팽창하는 우주, 물리법칙, 미세 조정된 물리상수, 화학법칙,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진화, 이 모든 것의 결과로 140억 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비참한 죄인”이라는 주장은 뒤집어보면 일종의 오만이라는 주장이다. “우리의 도덕적 행위에 어떤 우주적 의미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대단한 자만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도그마로 일관하는 종교와 인류의 과학적 발견의 사실 리스트를 비교하면서, 종교는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는 반면, 과학은 모르는 것에 겸손함과 호기심으로 도전하고 있다고 옹호한다. 과학자들은 인지과학자 데닛의 표현에 따르면, 입증 책임을 흔쾌히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히친스는 “종교인들이 항상 그들 스스로 믿음을 시험받고 있다고 말한다”며, “많은 사람이 이중장부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살아간다”고 믿음의 모순적 행태를 지적한다.

믿음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네 사람의 지적은 더 매섭다. 믿지 못할 수록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한다는 순환논리, 불합리한 추론이야말로 바로 사기꾼들의 수법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모든 것을 해치는 독’일까?

이 점에서 네 학자는 좀 차이가 있다. 데닛은 도킨스와 결이 다르다. 데닛은 넷 가운데 자칭 ‘착한 경찰’ 역을 자청하며, “조직된 종교가 할 수 있는 선함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데닛은 “거의 모든 종교가 감싸고 도는 비합리주의의 전제가 유감스럽지만, 구제하고 위로하는 역할을 잘해내는 국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속의 기구를 찾을 때까지는 교회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종교의 역할에 힘을 싣는다.

신경과학자 샘 해리스는 세상에 영생과 신비를 위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본다. 우리 삶에는 신성함을위한 자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허튼 소리를 전제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못박는다.

도킨스는 일관되게 교회는 불필요하지만 역사적 이유로 성경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성경을 모르고 문학과 미술, 음악, 그 밖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

종교를 비판할 때 모든 종교에 공평해야 할지도 논의의 테이블 위에 올랐다. 말하자면, 기독교, 이슬람교, 아미시파, 자이나교 등을 모두 같은 선상에 놓고 봐야 하느냐다. 이에 데닛은 “우리는 차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항상 균형잡힌 태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히친스는 모든 종교가 똑같이 거짓이라는 주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쪽이다. 종교는 이성보다 믿음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모두 거짓이라는 입장이다, “정신능력을 포기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결사적으로 버리라고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킨스 역시 모든 종교가 똑같다는 주장이다.

대니얼 데닛은 최근 힘을 얻고 있는 무신론을 확산시키려면 커밍아웃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인터넷 덕분에 밈(meme)의 확산이 더 빠르게 진행되는 까닭이다.

네 학자는 종교에 대한 생각이 미묘하게 갈리지만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다. “종교의 독단이 정직한 지식의 성장을 방해하고 인류를 쓸 데 없이 갈라놓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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