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가난’이 낳은 혐오와 차별, 아이들의 정신을 침식시킨다
라이프| 2019-11-08 11:15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 지음 / 노수경 옮김 사계절

2010년 영국은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그동안 방만하다고 지적을 받아온 복지정책을 대폭 감축, 긴축재정으로 돌아섰다. 종래 복지 예산의 5분의 1을 삭감, ‘파괴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는 실업자, 장애인, 사회약자를 덮쳤고 탁아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국에서 보육사로 일하는 일본인 브래디 미카코가 쓴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그 이전과 이후 탁아소가 어떻게 정치의 희생양이 됐는지 보여준다.

1996년 영국으로 건너간 미카코는 2008년 어느 날, 평균수입, 실업률, 질병률이 전국 최악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브라이턴 빈민가의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지원센터 부설 무료 탁아소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간다. 어리고 가난한 여성들이 양육 보조금을 타기 위해 계속 낳은 아이들과 이민자의 자녀들을 돌보며 알코올 중독, 폭력과 섹스에 찌든 영국 하층민의 실상을 목도하게 된다.

이 탁아소에서 만난 아이들은 무표정하거나 싸늘한 표정,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분노조절 장애 등 이상행동으로 그런 환경의 영향을 표출하는데, 저자는 이들을 현장보육사로서 있는 그대로 기록해나간다.

책은 긴축 탁아소 시절(2015.3~2016.10)과 긴축 이전, 저변 탁아소 시절(2008.9~2010.10)의 시절로 구분돼 있다.

긴축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민자를 위한 영어교실을 제외하고는 지원센터와 탁아소에 지급되던 모든 지원금이 끊긴다. 탁아소는 점점 인원이 줄고 그것도 이민자의 아이들 몇몇 뿐, 탁아소에 올 차비조차 없는 영국 하층민들의 아이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백인 하층과 이민자들이 부대끼며 갈등하고 이해도 하며 살던 밑바닥 사회는 혐오의 전장으로 변한다. 이런 와중에 탁아소는 굶주린 이들을 위한 푸드 뱅크에 자리를 내주고 문을 닫게 된다. 저자는 긴축의 시대에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들임을 강조한다. 영국생활 20년 동안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빈곤한 적이 없었다며, 빅토리아 시대, 디킨스의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한다.

유아 교육현장에서 일어나는 계급갈등의 모습은 상상이상이다. 저층민들을 위한 자원봉사시설인 탁아소와 민간 어린이집을 모두 경험한 저자의 관찰에 따르면, 탁아소의 아이들과 민간 어린이집의 아이들은 차이가 난다. 중산층 부모의 아이들은 어휘력이 풍부하고 놀랍게도 아이들의 손끝이 야무지다, 어린이집의 3세 아동은 저변 탁아소의 3세 아동이 절대로 접을 수 없는 형태로 솜씨 좋게 종이를 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탁아소의 아이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

3세 이상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주15시간까지 무료 보육도 첨예하다. 보육시설의 절반가량이 보육 비 보조 신청을 하지 않는다. 민간 어린이집 종일반에 아이를 맡기는데 드는 비용은 120만원 정도로 중산층 전용이라 불리는데, 이런 어린이집에 하층민 가정의 아이가 오는 걸 부모나 어린이집이나 꺼린다는 것이다.

저자는 저소득층, 저변계급을 위한 탁아시설의 중요성을 일깨우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생활보호수당을 지급하는 걸 주장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자존감, 존중의 힘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변시대 탁아소는 약물중독자 혹은 범죄자의 아이들에게 머물 공간을 제공하고 미래를 꿈꿀 기회를 주었고 온갖 혐오와 배제의 말들에 맞서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을 돌려주었다는 것이다. 유아교육 현장의 얘기 뿐만 아니라 상위 공립학교에 들어가려는 수요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현실 등 영국 교육현장의 생생한 기록은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윤미 기자/meelee@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