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2020 수능]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올 수능에도 수험생 ‘위로’한 필적 확인문구
라이프| 2019-11-14 14:42
14일 치러진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지 중 ‘필적 확인’ 문구. [연합]

[헤럴드경제=조현아 기자]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

14일 올해도 여지없이 찾아온 ‘입시한파’ 속에 전국 각지에서 2020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치러진 가운데, 수능 시험지에 쓰인 시구가 화제다.

이 문구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명인 박두진의 시(詩) ‘별밭에 누워’에서 인용한 시구다.

이는 ‘필적 확인’ 문구로, 응시자들이 1교시 국어 영역부터 4교시 탐구 영역까지 매 교시 답안지에 직접 옮겨 적어야 하는 글귀다.

시험지 왼쪽 상단에 있는 ‘필적 확인’ 문구는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이 대신 시험을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수험생 당사자인지를 시험 현장서 직접 쓴 답안지 글씨체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필적 확인’ 문구는 지난 2006년 수능부터 시작돼 올해로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 ‘06학번‘ 이전 수험생은 모르는 수능 답안지 작성 수순이다.

특히 이 문구는 처음 도입 취지와 달리 필적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요소’가 충분히 담긴 문장 가운데 긴장되고 경직된 수험생들의 마음을 달래고 힘을 주는 시구(詩句)로 쓰여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올 수험생의 위로글이 무얼까’ 하는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그러나 수능 관련 여느 사항처럼 ‘보안사항’으로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14일 ‘202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서울 이화여자외국어고에서 시험 전 한 수험생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

▶올 문구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2020년 수능이 치러진 14일, 올해의 수능 본인 확인 글은 ‘‘너무 맑고 초롱한 그중 하나 별이여’였다.

지난 1973년 발표됐으며 ‘수능’이라는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달려온 수험생들의 노력을 위로하는 글로 보여 따뜻한 배려가 눈길을 끌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어떤 글들이 수험생들이 답안지에 쓰는 첫 문장이자 위로가 됐을까?

지난해 11월 15일 치러진 수능 필적확인 문구 [인터넷 캡처]

▶처음 도입 문구는 직전 수능 부정사건과 관련 깊어=처음 필적 확인이 시작된 지난 2005년에는 윤동주의 시 ‘서시’의 첫 구절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었다.

이는 직전 학년도 수능이 치러진 2004년 11월 17일 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답안을 전송하는가 하면, 대리시험을 치르는 등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부끄럼 없이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에서 채택됐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해마다 이슈가 됐던 필적 확인 문구 모음. [출처=각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주옥같은 국민 애창 시구들 등장=이후 국민들의 애창시이자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아름다운 시구들이 해마다 하나씩 수능 문제지에 나와 수험생들의 손끝에서 쓰였다.

이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등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 시를 외우던 소년 소녀 시절의 풋풋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주옥같은 시구들이다.

이 밖에도 수능일 시험지에 올라온 문구는 아니지만 화제가 됐던 문구로는 “넌 머지않아 예쁜 꽃이 될테니까”(박치성 ‘봄이에게’·2017년 3월 고3 모의고사)와 “햇빛이 선명하게 나뭇잎을 핥고 있다”(한수산 소설 ‘유민’·2013년 6월 고 1·2 모의고사),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이 없다”(정호승 세월호 추모시 제목·2015년 8월 모의고사), “그대, 참 괜찮은 사람. 함께라 더 좋은 사람”(용혜원 시 일부 인용·2016년 7월 고3 모의고사), “아름다운 네 모습 잃지 않았으면” 등이 있다.

▶윤동주 시 최다, 정지용의 ‘향수’는 2번 선정=지난 13년 동안 ‘그동안 공부한 것을 잘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떨고 있을 수험생들의 감성을 어루만지고 훈훈하게 감싸주는 필적 확인 문구에는 윤동주의 시가 3번이나 나왔고, 정지용의 시 ‘향수’는 두 차례나 선정됐다.

▶모의고사·수능 등 출제위원 19자 이내 선정=필적 확인 문구는 어떻게 정해질까?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지에 나오는 필적 확인 문구는 각 출제위원이 토의를 통해 19자 이내의 길이로 문학작품을 참고해 정하기도 하고 창작하기도 한다. 시험 이후 수험생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하며 많은 공감과 위로, 재미 등의 후기가 올라오기도 한다.

한편 2005년 필적 확인 문구 도입 이후 아직 필적 부정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필적 확인 절차가 도입된 것은 지난 2004년 11월 17일 실시된 2005학년도 수능에서 전국적으로 수많은 수험생이 대리시험 등의 부정행위를 하다 적발돼 이를 막고자 강화 차원에서 시작됐다.

또한 휴대전화도 이때부터 시험 전 일괄 수거했다가 시험이 끝나면 되돌려주고 있다.

역대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다음과 같다.

▷2006학년도 윤동주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2007학년도 정지용 ‘향수’ 중 ‘넓은 벌 동쪽 끝으로’

▷2008학년도 윤동주 ‘소년’ 중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2009학년도 윤동주 ‘별 헤는 밤’ 중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2010학년도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2011학년도 정채봉 ‘첫 마음’ 중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

▷2012학년도 황동규 ‘즐거운 편지’ 중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2013학년도 정한모 ‘가을에’ 중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2014학년도 박정만 ‘작은 연가’ 중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2015학년도 문태주 ‘돌의 배’ 중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

▷2016학년도 주요한 ‘청년이여 노래하라’ 중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

▷2017학년도 정지용 ‘향수’ 중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

▷2018학년도 김영랑 ‘바다로 가자’ 중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

▷2019학년도 김남조 ‘편지’ 중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jo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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