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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눈치 보는 사회, 눈치 보게 만드는 사회
뉴스종합| 2020-01-08 11:26

#.숟가락 얹으려는 정치에 ‘눈치’만 쌓인다=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박홍근 을지로위원장 뒤로 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전국가맹점주협의회·참여연대·라이더유니온·민주노총 배달서비스지부 등이 줄지어 섰다. ‘배달의민족-딜리버리히어로(DH) 기업결합 심사 관련’ 이란 제목의 기자회견은 이례적으로 30여분 넘게 계속됐다. 박 위원장은 “우리는 이번 결합심사에 대해 어떤 예단도 갖고 있지 않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어떤 관여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 ‘정부 눈치’에 매각도 없던 일이 됐다=작년 초. 모 그룹이 계열사 한 곳을 매각하는 방안을 극비리에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매각은 초기 단계에서 없던 일이 됐다. 주판알을 튕겨보니 ‘잃을 게 더 많다’는 답을 얻었다고 한다. “정부와 노조 눈치 때문”(B사 관계자)이란다.

#. ‘노조 눈치’에 애꿎은 시간만 허비했다=“이래저래 보고만 있습니다” 자동화를 어디까지 할 수 있냐는 질문에 A사 임원의 답이다. 뒤이어 돌아온 부연설명. “눈치가 좀 보여서요.” 장황한 설명도 꼬리를 문다. “현재 사람이 하는 일 대부분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얼마나 대체할 건가, 언제 할 건가는 결정의 문제일 뿐이에요. 그런데 일자리가 걸린 문제라서 현재로선 그저 눈치만 보고 있어요. 먼저 했다가 정부나 노조나 사회여론으로부터 낙인 찍힐 수 있으니까. 사회적 합의가 있으면 좋으련만…”

‘눈치 보는 사회’다. 아니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회’다. 개인도 기업도 판단·결정 기제에는 늘 ‘주변의 시선’이 작동한다. 나와 다른 생각은 결코 용납치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은 조롱의 대상이다. 나와 다른 생각은 갈기갈기 물어 뜯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봐야 분이 풀린다. 그렇다보니 정상적인 소통과 판단은 불가능해진다. 눈치만 본다. 불안감에서 오는 눈치다. 혹여 내가 승냥이의 먹잇감이 되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 말이다. 그 많은 광장이 합의의 공간도, 타협과 조정의 공간도, 직접민주주의의 부활도 아닌 확성기 독설만이 득실대는 ‘밀실’로 변질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눈치는 곧잘 ‘정무적 판단’이라는 정치용어로 치장한다. 정무적 판단은 기업 경영 깊숙이 관여한다. 눈치코치 없이 했다가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는 않을지, 정치권이 숟가락을 얹어 문제만 더 키우진 않을지, 노조가 반대하지는 않을지…이래저래 눈치봐야 할 것들이 많다.

아마존의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는 2016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마존 경영진은 의사결정 속도를 계속 높여나가겠습니다. 속도는 비즈니스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신속한 의사결정은 근무 환경을 더욱 즐겁게 만듭니다”며 속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무적 눈치는 의사결정 속도에 브레이크가 될 뿐 아니라, 의사결정의 질도 떨어뜨린다. 게다가 1분 1초를 다투는 ‘혁명의 시대’와는 결도 다르다. 눈치 보지 않고 온전한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은 공정사회의 한 축이기도 하다. 정무적 눈치없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결정, 그 이후 과정과 결과로 합리적인 평가를 받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상식에 따른 합리적 판단’이 준거점이 된다면 ‘왼쪽(左)을 돌아보고(顧) 오른쪽을(右) 곁눈질(眄)’하는 일은 없을 게다. 정치는 죽었다 깨나도 그렇게 못한다면, 최소한 기업의 경영판단에 있어서 만큼은 ‘불필요한 눈치’를 만들어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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