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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새학기, 민감한 민식이법 ①] ‘초등 예비소집’ 학부모들 “당연히 지켜야” vs “과한 악법”
뉴스종합| 2020-01-10 10:11
지난 8일 신입생 예비소집이 열린 서울 성동구 동호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을 뜻하는 노면의 색과 제한속도 규정, 과속방지턱 등이 보인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아무래도 민식이법 때문에 좀 더 긴장하게 되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들긴 해요. 근데 그런 생각이 든다고 이 법이 괜찮다고 생각되기보다는 다른 법과 형평성을 따지면 약간 무리한 법이 아닌가 싶어요.”

서울 시내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 열린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동호초등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심모(41) 씨는 자녀와 학교에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12월 10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사망사고 가해자 처벌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본회의를 통과한 지 약 한 달. 그날은 심 씨를 비롯한 서울의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들 중 대부분은 초등학교를 향해 운전했다. 심 씨는 “운전하고 오면서도 긴장했다. 아무래도 민식이법 논란 후인지라 긴장이 되긴 하더라”고 했다.

▶민식이법 통과 후 더 예민해진 학교 분위기= 학교도 긴장하고 있었다. 동호초는 정문을 지나 학교 안에 주차장이 따로 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된 예비소집에 도착한 학부모들은 정문을 지나 차를 세웠다. 정문 앞 도로 바닥에 큼지막하게 쓰인, 제한속도를 나타내는 ‘30’이란 숫자와 방지턱 위를 학부모들은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나갔다. 차에서 내린 학부모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분주히 교실로 향했다. 운전하지 않고 자녀 손을 잡고 걸어온 학부모들도 울타리로 차도와 구분된 보도 끝에 다다르자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너기도 했다.

교내에 상주하는 학교 보안관도 차들이 속속 도착하자 신경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보안관은 주차 안내, 교무실 안내 등을 하면서도 시동이 걸린 자동차 근처로 어린이가 튀어 나가자 즉시 제지하기도 했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동호초등학교 현관. 예비소집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학교는 다가올 개학을 앞두고 ‘민식이법 대비’에 들어갔다. 오지영 동호초 교감은 “개학 후 출근 시 규정 속도 준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교직원 연수와 가급적 아이들 등교 시간 이전에 출근을 권유할 방침이다”라며 “교직원은 물론, 아이과 학부모의 안전 교육, 인식 강화에도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1교시 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면 부모님이 아이가 지각할까봐 속력을 내시는 경우가 많다”며 “이때가 특히 위험하므로 보안관과 함께 학교 차원에서 충분히 대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민식이법 대한 찬반 엇갈리는 학부모들= 자녀의 첫 ‘입학’을 준비하는 학부모들의 공통된 가장 큰 걱정은 역시 ‘안전’이었다. 학부모 최모(40) 씨는 “아무래도 차가 왔다 갔다 하니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된다”며 “아이에게 차 조심하라고 늘 얘기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모(37) 씨도 “아무래도 애들이 있으니 학교 앞 같은 곳은 조심히 오게 된다”며 “이번에 처음 입학하는 거라 개학 후 불안함은 솔직히 있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에 대해선 입장이 갈렸다. 학부모 이모(37)씨는 “법 얘기가 나온 후 혹시라도 위반하지 않으려 조금 더 긴장하게 됐다”며 “저도 아이가 있다 보니 원래 스쿨존 안에선 당연히 주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모(40) 씨는 “아무래도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예민하게 운전을 했고 주의도 했다”면서도 “법 얘기가 오간 후 아이를 키우지 않는 분들도 좀 더 주의를 하시게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내용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부모 대신 아이를 데리러 온 서모(61) 씨는 “애들이 1~2학년 때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해 꼭 데리러 오고 데려다 준다. 속도도 다 줄이고 항상 지킨다”면서도 “사람을 죽이려 일부러 운전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피치 못할 사고마저 일률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식이법의 ‘악용’을 우려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교육계에 종사한다는 학부모 정모(42) 씨는 “민식이법은 다른 법과 형평성이 어긋나 조금 심한 법 같다”며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이 ‘어? 내가 저 선생님 차에 가서 부딪히면 저 선생님을 그만두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 (개정)청원에 동참하자고 말도 나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 있어 수위를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며 “악용될 소지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초등학생들을 데리러 학교에 오는 지역 체육학원들도 시름에 잠겼다. 동호초 근처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이모(40) 씨는 “민식이법 얘기가 나온 후로 운전기사를 뽑기가 어려워졌다”며 “아이들 하교 시간이 다 동일해 그 시간에 아이들이 특히 붐벼 위험 부담이 커지니 이제 아무도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맞벌이 어머니들은 픽업을 안 하면 안 좋아해서 운전기사가 꼭 필요한데 요즘은 사람 뽑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서울 성동구 동호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한 차량이 규정속도를 지키기 위해 천천히 운전하고 있다. 박상현 기자/pooh@heraldcorp.com

민식이법, 오는 3월부터 시행 예정= 민식이법은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에서 김민식(당시 8세) 군이 스쿨존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한 후 그의 이름을 따서 발의된 법이다. 사고 예방을 위한 스쿨존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지방자치단체장이 신호등 등을 우선 설치(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와 스쿨존 내 사망사고 가해자의 가중처벌(특정범죄 가중처벌 법률개정안)을 골자로 한다. 새 학기 직후인 오는 3월 18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스쿨존에서 운전자가 제한속도 시속 30㎞를 초과하거나 안전 운전 의무를 소홀히 해 13세 미만 어린이를 숨지게 하면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상해를 입히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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