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컬럼비아대 25년차 북디자이너 이창재…삶에 길을 낸 책
라이프| 2020-01-17 11:42
기억과 기록 사이 이창재 글, 노순택·안옥현 사진 돌베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생의 초기부터 우리는 평생 읽는 행위를 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읽은 책을 세워놓으면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이 보일지도 모른다.

컬럼비아대 출판부에서 북디자이너로 25년째 일하고 있는 이창재씨의 ‘기억과 기록 사이’(돌베개)는 삶 속으로 들어온 책이야기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책이 삶에 길을 내고 틀어가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다. 그 과정에 유명 작가, 알 만한 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갈 뿐, 글은 담담하게 흘러간다.

그가 처음 만난 문학책이 열 살 때 서울대교양수업 교과서인 ‘대학작문’이란 얘기는 흥미롭다.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과 이상의 ‘날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책이 탐나 사촌형이 군대에 입대할 때 빌려온 책을 그는 아직도 갖고 있다. 그는한국문학 초기소설들을 이 책으로 처음 접했다.

책이 만들어내는 자장은 예측불가능하면서 집요하고 넓다. 대학출판부에서 일하던 어느 날 그는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언제 생을 마감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돌연, 하고 싶었던 일 하나만이라도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2011년 4월 맨해튼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진행되는 한국문학작가와 번역자간 대담 행사에 참석한 그는 김영하 작가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를 만나게 된다.

그가 상업적인 출판사나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지 않는 이유를 밝힌 대목도 눈길을 끈다. 젊은시절 12년 동안 열서너가지 비정규 임시직을 전전한 끝에 정규직이 되자 불안정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책에 있었다. 대학 출판사가 펴낸 책 중에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공개되지 않은 대담집 ‘초록 눈’ 때문이었다는 고백이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에 생’, 님 웨일즈의 ‘아리랑’, 밀란 쿤데라의 ‘삶은 다른 곳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글의 기둥으로 삼아 책과 삶, 기억을 오가며 펼쳐내는 이야기는 그의 멈춰버린 한국에서의 시간 속에서 독특한 시차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개인의 삶을 구성한 북리스트들의 면면은 꽤나 인상적인데, 문학 작품 외에 소설선, 가곡 선집, 문학대전집 등은 외국에서 모국어, 문학을 어떻게 만나는지 보여준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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