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핀테크 CEO 트로이카…“가슴 뛰는 일 찾아 창업의 길로”
뉴스종합| 2020-01-31 11:11
지난 20일 만난 핀테크 대표들. 왼쪽부터 김진경 빅밸류 대표, 김민정 크레파스솔루션 대표, 김정은 스몰티켓 대표 이상섭 기자

3.6%, 6.1%.

3.6%는 국내 상위 500개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고, 6.1%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스타트업 가운데 여성이 창업한 곳의 비율이다. 연구개발 기능이 거의 없는 금융권에서는 최고경영자(CEO)는 물론 여성 임원 조차 찾기 어렵다. 그나마도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영업분야에 한정된다.

세 사람의 핀테크 여성 CEO를 한꺼번에 만났다. 금융에서 더 이상 ‘여성’을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경영자의 성별 자체가 중요하게 되지 않을 ‘그 날’을 열 주인공들이다. 김진경 빅밸류 대표, 김민정 크레파스솔루션 대표, 김정은 스몰티켓 대표다. 이들 모두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신한퓨처스랩)을 졸업했다. 만남은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에서 이뤄졌다.

‘여성 핀테크 CEO’란 선정 이유를 소개하자, 바로 지적을 받았다.

김민정 대표는 “스타트업을 하는 남자 CEO들에겐 ‘육아와 경영을 함께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묻지 않는다. 남자도 육아와 가사의 주체다”고 꼬집었다.

질문에 남녀 구분을 하지 말라는 ‘경고(?)’다.

▶ ‘꽃 길’ 대신 ‘안가본 길’=세 사람 모두 이른바 고소득이 보장된 전문직을 박차고 나왔다.

김민정 대표는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97년부터 IT솔루션회사에서 금융사의 고객관리 전략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 김진경 대표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사법고시에 합격, 변호사로 일했다.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다가 한 증권사로 넘어가 투자은행(IB) 부문에서 일했다.

김정은 대표는 영국 런던정경대(LES)서 유학했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원래 유엔(UN)에서 디지털 정보격차(Digital Divide)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다. 실무경험을 위해 유학을 마치고 컨설팅업체 엑센추어에서 보험사의 디지털전략 수립을 도왔다.

▶창업에 나선 이유…‘가슴 뛰는 일’ 위해=셋 모두 저마다 ‘금융이 왜 이럴까?’라는 문제의식을 품었었다. 때마침 핀테크가 화두로 부상했고, 정부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길을 열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두근거림’이 이들을 뛰게 만들었다.

김민정 대표는 고객관리 전략을 개발하면서 국내 금융사들이 체계적인 개인신용평가(스코어링)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발견했다. 2001년 FK BCG를 설립, 세계적인 스코어링시스템인 파이코(FICO)를 국내에 들여와 은행 등 130여곳의 금융사들의 자체 신용평가모델(CSS)를 구축을 도왔다. 그러다 문득 ‘신용평가가 효율만 추구하니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휩싸였다. 대안신용평가에 열정을 쏟게 된 계기였다.

김진경 대표는 법무팀이 아닌 부동산금융 실무를 다루는 부서에서 일한 덕분에 부동산과 빅데이터의 결합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김정은 대표는 엑센추어에서 글로벌 보험업계를 스터디하면서 인슈어테크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미래의 금융은=요약하면 ‘정보의 비대칭’으로 빚어지는 금융 서비스의 격차해소다.

김민정 대표는 ‘신용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2016년 세운 크레파스솔루션은 비(非)금융데이터를 활용해 개인의 신용도를 판단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구축했다. 활용하는 데이터를 보면 ‘이런 것도 가능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마트폰에 무슨 어플리케이션(앱)을 깔았는지 SNS 채널에선 어떤 게시물을 즐겨보는지 등의 정보를 활용한다.

김 대표는 “사람의 본질이 아닌 제한된 과거 금융데이터가 전부가 돼 (저신용자로) 낙인찍히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새로운 평가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3명의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창업에 나선 김진경 대표는 턱없이 부족했던 연립·다세대주택 관련 시세 데이터에 몰두한다. 그간의 주택 데이터는 아파트 일색이었다. 이 때문에 다세대주택을 담보로 대출하려는 이들은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됐다는 게 빅밸류의 판단이다.

이 회사는 실거래 통계, 지적정보, 건축물대장을 인공지능(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기술을 구축해 2017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연립, 다세대 시세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주택대출 심사를 하는 은행들까지 이미 탐내는 시스템이 됐다.

김 대표는 “기술을 활용해 정보와 서비스의 비대칭성을 해소하고자 한다”며 “장기적으로 종합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로 진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2016년 스몰티켓을 창업한 김정은 대표는 ‘위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조명했다.

그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을 세분화하고 생활패턴을 나눠보면 기존 보험사들이 놓쳤던 새로운 고객군이 나타난다”며 “생활방식이 비슷한 고객군에 최적화된 보험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달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하나의 일자리로 등장한 시간제 배달원을 겨냥한 ‘시간제 이륜자동차 보험’이 대표적이다.

▶3인 3색 ‘경영스타일’=세 사람의 경영스타일은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 걸어온 길이 어느 정도 투영된 듯하다.

고객전략 경력이 많은 김민정 대표는 ‘일단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그는 “배달의민족도 처음엔 전단지부터 시작했다. 회사 직원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 내놓자는 생각들이 많았다”며 “저는 그럴 때마다 일단 치고 나가보자고 얘기했다. 규모 확장이 생각보다 느려서 아쉬웠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출신의 주택플랫폼 개발자 답게 김진경 대표는 ‘꼼꼼하게 되짚는’ 스타일이다. 그는 “가끔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판단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야 내가 오늘 생각한 것이 내일 어떻게 구현이 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크다”고 소개했다.

컨설팅 업계에서 일했던 김정은 대표는 상대에 대한 배려를 늘 생각한다. 그는 “처음에는 제가 만든 서비스모델을 자부하지만 실제 업무에 적용을 하다보면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핀테크든 디지털라이제이션이든 결국은 사람과 사람의 설득과정이다. 일이 좀 더 효율적이려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준규·박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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