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일반
[김영상의 오지랖] 청와대에 또 패싱 당한 전경련 “뭐, 이젠 무덤덤해요”
뉴스종합| 2020-02-14 09:12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입장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문 대통령,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또 ‘패싱’ 당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계 인사들과의 13일 만남에서 재차 왕따신세가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주요 경제인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공식 명칭은 ‘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서로 힘을 합쳐 경제회복에 노력하자는 차원에서 이뤄진 만남이었다. 행사는 오전 10시30분쯤 시작됐고, 12시 가까이에 끝났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이제는 정부와 경제계가 합심해 경제 회복의 흐름을 되살리는 노력을 기울일때”라고 했다.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윤여철 현대자동차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이 참석했다. 이들은 주요 대기업 총수 및 대표다. 경제단체장으로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김영주 한국무역협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경제5단체 중 전경련 수장만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패싱 얘기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전경련 패싱’은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전경련은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이후 문재인정부로부터 적폐청산의 주요 대상으로 적시돼왔다. 한마디로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간헐적으로 기업인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 행사를 열고 기업 총수 및 경제단체장을 만나왔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전경련을 아예 초청대상에서 제외했다. 특히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한 행사를 많이 진행했다. 그러다보니 ‘재계의 맏형’이라는 전경련의 타이틀은 옛영광으로 남았고, 대한상의 쪽으로 넘겨진지 오래됐다.

이날 행사 뒤 ‘패싱’이라는 단어가 더욱 부각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경련 쪽에선 문 대통령과 기업인 만남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기자는 이날 오후 전경련 관계자와 다른 일로 통화할 일이 있었는데, 대한상의에서 이런 행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한때 재계 맏형으로 불렸던 전경련의 위상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는 “오늘 또 패싱 당했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회의(문 대통령-6대기업 간담회)가 열리는 것도 몰랐어요. 기사 보고 알았어요”라고 허탈해했다. 다른 관계자는 “신종코로나와 관련된 경제활력 안건은 이념 문제는 아니잖아요? 경제살리기 문제는 같이 의논하면 좋을텐데…”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의 홀대에 대해)5년간 기조가 바뀌겠어요? 그런가보다 하고 무덤덤하게 살아야죠”라고 했다. 짙은 체념이 묻어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서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

사실 지난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전경련을 방문했을때, 문재인정부가 ‘전경련 왕따 해제령’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일었다. 전경련도 이때 은근히 향후의 장밋빛 기대감을 가졌다고 한다.

지난해 9월25일 민주당 지도부는 전경련을 찾아 주요기업 현안 간담회를 열었다. 당에선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해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 신경민 제6정조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전경련 측에선 권태신 부회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간담회는 일본의 경제보복 태풍이 한창인 가운데 기업의 애로를 듣고 경제활성화 방안을 모색하자는 차원서 이뤄졌다. 당시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이 재미있다. 이 수석부대표는 “사실 민주당 의원들이 (전경련을)찾아오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어려움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지혜를 모아볼까하는 마음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청와대 만큼 전경련에 대한 곱잖은 시각을 갖고 있는 집권 여당의 시선을 시사한 멘트였다. 당시 참석 인사는 “사실 더 많은 사람이 올수 있었는데, 하필 전경련에서 그런 행사를 하느냐고 불참한 이도 꽤 있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만남을 계기로 여권과 전경련의 불편한 관계가 일부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견해가 뒤따랐다.

전경련 측도 이런 기대감을 키운 것은 바로 한달전 민주당이 전경련회관에서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과 정책간담회를 가졌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한 기업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청취하고자 하는 일환이었다. 이날은 공식적으로는 전경련이 아니라 그 산하단체인 한경연과의 만남이었지만, 그때도 문재인정부가 고수하던 ‘전경련 보이코트’라는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 이후 한달만에 공식적으로 여당이 전경련을 찾으니, 당연히 “전경련에 다시 봄이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돈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더이상 문재인정부의 당정은 전경련을 찾지 않았고, 특히 청와대의 ‘전경련 배제’ 철학은 여전히 철옹성 체제를 보여왔다.

정가에선 문 대통령의 전경련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지 않은 것을 주요 배경으로 꼽는다. 공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문 대통령이 ‘전경련=불공정’ 이미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소신과 철학이 분명한 사람으로, 한번 아니면 아니다라는 것을 쉽게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전경련에 박힌 미운털이 쉽게 빠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말이다.

청와대 주요 인사들의 전경련에 대한 불편한 시각이 오랫동안 반영되고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청와대 핵심 인물들이 개인적 캐릭터별로는 다양한 코드를 갖고 있지만, 재벌 규제라는 큰 폭의 공감대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렇다보니 ‘대기업 옹호’에 매달려온 전경련에 대한 근원적인 적대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각종 행사에 ‘전경련 원천 배제’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초청 대상에 ‘전경련’ 이름 석자는 완전히 빠져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됐든, 참모들의 공감대가 고스란히 영향을 줬든 그래서 전경련의 패싱은 집권 내내 재현될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전경련 역시 이런 분위기를 모를리 없다. 전경련 내부에서 ‘패싱’ 얘기가 처음 거론될때 잔뜩 긴장했는데, 최근에는 무덤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만 전경련을 둘러싼 안팎의 분위기를 종합하면 전경련 측은 ‘박근혜=적폐=전경련’이라는 문재인정부의 공식에는 정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정부가 낙인 찍은 ‘주홍글씨’라는 것이다.

전경련 출신의 재계 관계자는 “사람들이 잘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박근혜정부 초기만해도 전경련에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다. 그걸 만회하려하다보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고,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경련이 환골탈태해야 하는 이유”라면서도 “다만 국정농단 사태는 당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등의 집행부의 잘못이었는데, 그것이 전경련 전 직원의 주홍글씨가 된 것은 서글프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달 21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취임초기만해도 전경련에 거부감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때 중기적합업종제도 실효성 제고와 함께 경제민주화 및 중소기업 활성화를 우선 추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 전 대통령이 표방한 단어도 ‘중기 대통령’이었다. 그러다보니 전경련은 박근혜정부 들어 주요 표적이 됐다. 경제민주화에 걸림돌로 여겨진 전경련은 이때 무용론 내지 해체론에 시달렸다.

어쩌면 전경련의 숙명이기도 했다. 지난 1961년 민간 경제인의 자발적 의지로 설립된 전경련은 대기업을 위한 이익단체로 출발했고, 그러다보니 ‘재벌 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재벌 정치자금 문제가 이슈로 부각할때마다 전경련의 ‘창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긍정적 기능 또한 적지 않았다. 경제가 한없이 어려웠던 1997년 외환위기때엔 그룹 간 빅딜을 주도하면서 산업구조조정 과정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전경련 초대회장이었던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이나 이후 바통을 이어받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구자경 LG 명예회장,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의 면모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고 경제활성화 일익을 담당해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혹자들이 그래서 오늘날 전경련의 쪼그라든 위상과는 무관하게 최소한 전경련의 공과 과는 구별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다.

얼마전 한 식당에 갔을때, 옆테이블에 있던 이가 인사를 건네는데 전경련 직원이다. 수년전에 알았던 이로, 전경련에서는 젊은축에 속한다. 그와 잠깐 얘기를 나눴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몇마디를 한다.

“그냥 그래요. 요즘 그냥 그렇게 지내요. 전경련 직원이라는 자긍심은 사라졌어요. 옛날 선배들의 ‘전경련에 취직했을때 시골 집에서 잔치를 벌였다’는 등의 얘기는 귀에도 안들어와요. 국정농단 사태 후 직원 수십명은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떠났고요. 임금은 30% 이상 깎였어요. 전경련 패싱요? 잘못했으니 숙명으로 받아들여야죠.”

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벌 받은 것 당연하고, 그 벌은 충분히 받았다고 봅니다. 그런데요. 문재인정부의 도덕적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는 나중에 지켜보려 합니다. 문재인정부가 얼마나 고결한 정부였는지 꼭 확인하고 싶어요.”

오늘날 추락한 전경련의 위상, 그리고 여전히 무용론에 휩싸여있는 전경련의 향후 방향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혹자는 말한다. 전경련이 살려면 기업 경영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있어서 획기적인 일조와 함께 사회공헌활동 범위와 수준을 선진국 이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야 된다고. 혹자는 또 말한다. 전경련이 살려면 대기업 옹호가 아닌 기업정책의 실효적 비전을 제공하는 싱크탱크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밖에선 누구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지만, 당사자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전경련의 오늘날 고민은 여기에 있다.

전경련의 추락과 패싱,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크게는 한국 정치와 경제, 작게는 재계의 앞을 볼 수 있는 포인트 중 하나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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