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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오염된 정의
뉴스종합|2020-05-25 11:20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해도 너무 흔해지면 그 단어가 가진 의미와 울림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 하물며 본뜻이 지닌 가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되는 말을 볼 때, 그 난감함은 이를 데 없다. ‘공정’이라는 단어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은 게 작년 가을이었다. 입만 열면 공정을 외치던 ‘법학자’ 조국은 자녀 입시, 사모펀드 투자 등 공정과는 거리가 먼 각종 의혹으로 온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당시 법무부 장관 사퇴를 부르짖은 수천명의 대학생은 단지 그와 가족이 저지른 불법과 위법적 행태에 촛불을 든 게 아니었다. “누구보다 공정과 정의를 외쳐온 사람이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법적 문제는 없다’는 말로 일축하는 데 분노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둘로 쪼개진 6개월간, 많은 이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느껴야 했다.

‘조국 사태’ 판박이라고 불리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의혹과 논란이 또다시 사회를 혼돈에 몰아넣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문제제기로 시작된 정의연의 기부금 사용처 의혹이 회계 투명성 논란과 안성 쉼터의 수상한 매입 및 매각 의혹 등으로 번지고 있다. 전신인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까지 따지면 기부금을 받고 국세청 공시에 누락한 액수가 수십억에 달한다. 할머니들이 편안히 머무실 곳이라며 2012년 마련한 안성 쉼터는 7억5000만원에 사서 4억2000만 원에 팔았다.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경매로 산 아파트 구입 대금 출처를 두고 살고 있던 집을 팔았다고 했다가 반나절 만에 적금 해약으로 마련한 돈이라고 말을 바꿨다. 윤 당선자는 정의연 활동을 하면서 본인 명의의 은행계좌 4개를 통해 기부금을 모금했다.

윤 당선자는 지난 30년간 정대협과 정의연을 이끌면서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을 위해 힘써온 인물이다. 도덕적 우위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해 왔기에 국제사회 여론의 뜨거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각종 의혹에 부실한 해명, 잦은 입장 번복 등으로 스스로 논란을 키웠다.

무엇보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이 최일선에 내세웠던 가치가 ‘정의’였기에 안타까움은 더 크다. 사실 나는 정의가 뭔지 또렷이 알지 못한다. 다만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 대신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본질을 흐리거나, 비판 세력을 향해 친일 프레임을 씌우는 건, 정의가 아닌 것 같다. 악몽 같은 기억을 간신히 끄집어내 수십년간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던, 그리고 이번에도 용기 내 입을 연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 “기억이 왜곡된 것 같다”고 폄훼하는 건, 정의가 아닌 것 같다.

대신 수십년간 정의연을 지지해 온 시민이 보편적으로 느꼈던 충격과 안타까움, 그리고 피해자 할머니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송구스러움과 죄책감이, 정의에 보다 가깝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가에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여당 의원의 훈계가 아니라, 정의연 사무실 담벼락에 ‘할머니들의 슬픔과 고통을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쓴 누군가의 그 마음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한 지금 정부에서, 오히려 공정과 정의가 오염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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