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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코로나 이후 의료생태계, 소비자가 주도권 쥔다
라이프|2020-07-30 11:45

1996년 서울대병원 원격치매센터가 개소됐다. 당시 인터넷은 너무 느려서 고가의 전용선을 깔고 전국 치매 요양센터와 노인복지회관을 연결했다. 큰 성공이었다. 환자도 의료진도 만족했고 치매관리엔 혁신이었다. 하지만 장비는 비쌌고, 매달 수백만원씩 통신료를 내야 했다. 대량 보급은 요원했다. 2000년대, 인터넷과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 원격의료를 시도했다. 당시 법무부와 서울대병원 협력으로 도입한 전국 교도소 원격의료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해양경찰선을 인공위성망으로 연결한 섬마을 진료도 큰 성공을 거뒀다. 군 원격의료도 보급됐다. 하지만 각 가정을 연결하기엔 여전히 너무 비용이 컸다.

2010년 원격의료가 다시 이슈화되자 한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대병원에선 의사들에게 스마트폰 지급하기로 했다면서요?” 질문의도는 알겠지만 죄송하게도 핀트가 빗나갔다. 스마트폰 지급은 병원 정보시스템의 보완일 뿐 환자 진료와는 별 상관없다. 병원 밖에서 검사결과를 확인하거나 처방하는 일 정도가 가능했는데, 원래 전화로도 다 하던 일이었다.

2020년 코로나는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장애물은 부족한 통신 인프라, 높은 투자비용, 기존 의료방식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신선식품도 내일 새벽이면 배달된다. 원격수업으로 어린 학생들도 화상회의 달인이 되었다. 모든 거부 명분을 코로나가 제거했다. 전 국민 스마트폰, 전 국민 화상접속, 전 국민 택배시대다. 이제 학생들은 방송통신대 교수님 강의가 명문대 교수님 강의보다 훨씬 좋다는 것을 잘 안다.

정부는 ‘비대면’으로 한시적 원격진료를 허용했다. ‘비대면’이 표현만 바꾼 ‘말장난’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말장난 맞다. 하지만 시대 변화와 함께 ‘원격’과 ‘비대면’을 구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원격은 ‘거리’에, 비대면은 마주 앉은 ‘만남’에 방점을 둔 표현이다. ‘원격’은 공공정보화나 병원정보화 시대 ‘공급자 중심 관점’이다. 지리적 한계를 넘어 취약자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관점이다. ‘비대면’은 개인 정보화시대 ‘소비자 중심 관점’이다. 소비자는 이미 초고속 스마트폰과 장비로 무장했다. 이제 선택은 공급자가 아닌 강화된 소비자 몫이다. 소비자는 공급자를 비교하고 평점을 매긴다. 반드시 마주앉아야만 할 일이 아니면, 소비자는 굳이 대면을 원치 않는다. 지난 학기 서울의대는 초유의 원격강의를 했다. 평가결과는 극명히 갈렸다. 교수들은 원격교육은 강의의 질과 집중도가 떨어진다며 나쁜 평점을 주었고, 의대생들은 오히려 더 좋았다고 평했다.

외래 방문 건수가 연 7억건을 넘는다. 방문에 필요한 2시간에 최저임금만 곱해도 14조원이다. 환자가 낼 돈이라 아무도 신경을 안 썼다. 비대면 진료 후에도 약국에 가서 복약지도를 받아야 하고 처방약 원격배송도 금지된 현행법은 황당하다. 이제 강화된 소비자는 의사, 약사와 대면상담이 꼭 필요한 경우와, 똑같은 처방약만 받아도 되는 두 경우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는 대면과 비대면 중 선택할 권리를 원한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료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김주한 서울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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