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 바로보기] 8월 그날의 일본과 일왕
뉴스종합| 2020-08-07 11:46

75년 전 8월 15일 정오, 일본의 라디오를 통해 쇼와 일왕 육성이 흘러나왔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에 공동선언의 수락을 통고하고자 한다. … 적은 잔학한 폭탄을 사용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살상하였으며, 교전을 계속한다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 … 금후 제국이 받아야 할 고난은 심상치 않고, 참기 어려움을 참고, 견디기 어려움을 견뎌, 萬世를 위해 태평한 세상을 열고자 한다.”

방송 잡음이 심했고, 당시 쓰이던 일본어가 아닌 왕실 용어를 사용해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길 거리 사람들은 방송을 들은 뒤 넋을 잃고 함께 울었다고 한다. 흔히 쇼와 일왕의 항복 선언문으로 불리지만, 일본에선 ‘대동아전쟁 종결 조서’로 발표됐다.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던 일본의 침략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과 1941년 진주만 공습으로 개전한 미일전쟁은 막을 내렸다. 앞서 1944년 10월 미군의 필리핀 탈환, 1945년 4월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으로 연합군 승리는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일본군부는 8월 들어서도 미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옥쇄(玉碎)’를 주장했다.

그런 군부도 새로 등장한 원자폭탄의 위력에 무릎을 꿇었다. 8월 6일, 미군의 B29 전폭기에 실려 히로시마 상공에 터진 원자폭탄으로 6만여명이 즉사했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도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됐다. 일부 강경파 군인들의 쿠데타 움직임 속에 일왕은 대국민 선언 하루 전인 8월 14일 연합군 측에 포츠담선언의 수용을 전달했다.

그날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신의 자리에 올랐던 일왕이 80여년 만에 인간으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다. 메이지헌법은 ‘천황은 신성불가침’ ‘국가의 원수이며, 통치권을 총괄한다’로 규정했다. 종전 다음해 1946년에 공포된 ‘일본국 헌법’에 따라 일왕은 “자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고 선언한다. 새 헌법의 골자는 ▷상징 천황 ▷평화주의 ▷인권 존중 ▷분쟁 해결 수단인 전쟁의 포기이다.

일본의 새 헌법 아래 처음 즉위한 부친 아키히토(明仁)와 현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126대 나루히토 일왕은 작년 5월 즉위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일본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그는 즉위 이후 정치, 외교 현안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올 7월에는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을 격려했고, 이달에도 호우 피해 주민들을 위로하는 국민통합 행보에 주력했다.

일본에서는 ‘일왕’이 신성불가침 영역이라는 걸 실감할 때가 많다. 일반인들은 일왕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그래도 일왕제를 지지하는 일본인들이 절대다수일 정도로 왕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다. 종전 75년이 지났지만, 아시아 각국과 일본 간 풀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정치권에는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를 개정하려는 극우세력이 많다. 8월을 맞아 일왕이 아시아 지역의 평화 정착에 조금 더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주기를 희망한다.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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